유기견 절반은 길에서 태어나…세금 수백억 투입
동물 살리기 위해 투입된 세금, 죽음 처리에 쓰여
'출생 억제' 공약에 없어…반복되는 유기견 고리
[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시골 마당에서 줄에 묶여 살던 개가 새끼를 낳는다. 그중 몇 마리는 어미와 똑같이 묶여 살게 되거나, 밭 지킴이 개가 된다. 남은 개들은 거리를 떠돌다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다. 입양되지 못하면 안락사된다. 제 어미처럼 묶여 살던 녀석들이 또다시 수십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이 익숙한 구조는 매년 반복된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동행) 최미금 대표는 "시골 마당 개가 새끼를 낳으면 박스째로 갖다 버리는 경우도 많다"며 "시골은 사실상 유기견 공장"이라고 강조했다.

◆ 책임 없는 탄생, 반복되는 죽음…세금만 374억원
23일 뉴스핌 취재를 종합하면 유기견의 절반 이상은 의도치 않은 생산 결과였다.
지난해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2023년 유실·유기 동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실·유기 동물 연령별 발생 현황은 0세가 53.1%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2022년에도 0세는 53.8%로 역시 절반을 넘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유기 동물 중 절반 이상이 0세라는 통계는 유기 동물 대부분이 밖에서 새로 태어나 동물보호센터에 유입된다는 의미"라며 "대부분 책임질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보호소로 들어오고, 입양되지 못하면 안락사된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해 국내 유기 동물 수는 11만3072마리다. 이들을 구조·보호·안락사 등 관리하는 데 들어간 세금만 374억원에 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백억의 세금을 투입했음에도 자연사 27.6%(3만1238마리), 안락사 18%(2만346마리) 등 보호소에서 죽는 비율은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입양된 유기 동물은 전체의 24.2%(2만7343마리)에 불과했다. 동물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세금이 결국 죽음을 처리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안락사나 폐사(자연사) 비율이 높은 건 동물보호 센터에 대한 지원 금액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라며 "(현재 지원 금액인) 마리당 10만~15만원을 받아 인도적으로 보호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동물 보호소에서 봉사자로 활동하는 강미소 씨(가명·여)도 "전국 모든 보호소가 유기견으로 포화 상태"라며 "매일 다른 개들이 밀려오고,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통 10일간의 공고 기간이 끝나면 안락사를 시킨다"고 말했다.

◆ 유기동물 공약, '처리'만 있고 '차단'은 없다
이런 실태에도 불구하고 유기 동물 발생 자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근본 대책은 이번 대선 후보들 공약 어디에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유기 동물과 관련해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발생 자체를 억제하지 않으면 관련 예산은 앞으로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대선 후보들의 정책 대안이 미흡한 것이다.
주요 대권 후보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그나마 유기 동물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김 후보는 유기 동물 입양 지원과 입양 플랫폼 운영을 약속했고, 이 후보는 동물보호센터 예산과 인력 확충, 불법 번식장 규제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측에서는 반려견 목줄 미착용 등 단속 제도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했고,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측은 현재 동물 관련 공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두 후보 모두 관련 정책 조차 내놓지 않았다.
이는 후보자들 모두 유기견 문제가 동물의 생명권을 넘어, 공공 자원의 효율적 사용과도 직결되는 정책 과제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 유기견 안락사율 1위인 제주도에서 동물 구조 활동을 하는 유재연씨(여·소설가)는 "밭 지킴 개가 방치된 채 계속 새끼를 낳고, 들개와 섞여 유기견이 반복 생산되고 있다"며 "국가가 시골 개, 마당 개 개체 수 조절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hogiz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