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집에 김 사장님은 정년퇴임을 하자 곧바로 객지에 내려와 혼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남들은 어머니 유산이 많아 그럴 거라고 하지만, 1원 한 푼 없다고 한다.
둘째 아들로서 어머니를 모신 지가 하루 이틀 지난 게 벌써 5년째다. 요즘 젊은이들이 3포 5포 7포 시대라 하는데 김 사장님은 더 많은 걸 포기하면서도 어머니를 지극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있다.
앞집에 큰 경사가 났다. 부인이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시어머니를 같이 모시는 것이다. 아마 서울에 있는 집은 자녀들에게 맡기고 내려오신 것 같았다. 그래도 맘은 거기가 있을 거다.. 이제 부부가 어머니를 섬기는 모습이 보기에 아주 좋았다.
아들보다 며느리가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옷차림부터 달라졌다. 유치원 아이들 옷 단장을 하여 등교 차를 태우듯 어머니의 옷차림부터 관심을 가지신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옷의 종류와 색깔이 달라진다. 아침에 허리가 굽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며 걸어 나오신다. 오후에 차에서 내리시면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모시고 온다. 무슨 할 이야기가 많은지 대화는 끝날 줄 모른다.
며느리가 아니라 딸처럼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곁에서 보면 진짜 모녀 다. 다정하다. 어머니가 노인주긴보호센터 차에 승하차하실 땐 어린이집 교사가 되어 옷부터 바꿔 입는다. 할머니께 인사하면 바로 ‘감사합니다.’로 답례를 하신다. 그때 며느리는 앞집에 누구라고 꼭 알려드린다. 치매를 치료해보려는 욕심에서 그럴 거다.
지금은 집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 대신에 서둘러 나와 코앞 초등학교에 들어가 무얼 한두 가지씩 보여 드리고 나온다. 허리가 ‘ㄱ자’로라도 몇 걸음 더 걸어 다리 근육을 낫게 하고 기분도 좋게 해드리려는 깊은 속셈일 것이다. 어머니가 차에 타시면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며느리의 지혜는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어느 주말 오후, 집 앞 골목길 풀을 어머니와 같이 뽑는 것이다. 어머니는 낮은 둥근 방석 의자에 앉아 호미로 풀을 뽑으셨다. 옛날 시골에서 날마다 하시던 일이라 한 포기도 남겨두지 않고 천천히 뽑으셨다. 잘 뽑으신다는 내 칭찬을 못들은 신체 집중하셨다.
오래전부터 할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신다고 했다. 며느리도 그럴 게다. 노인치매치료에 좋다고 하니까 대문 밖에다 꽃병에 빨간 장미꽃을 꽂아놓고, 여러 화초를 가꾸고 있다. 골목길 양쪽에 있는 잡초로 여긴 작은 야생화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키가 조금 크니까 노란 꽃을 피워 할머니를 반겼다. 우리 집 앞도 그대로 두고 할머니가 보고 다니시게 했다.
요즘 할머니의 정신력은 똑같은데 기분은 괜찮다고 하신다. 아마 아들 효도에다 며느리의 효도를 더하기 때문일 것이다. 맘속으로 ‘그 효자에 그 효부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할머니를 뵐 때면 효자에다 효부의 효도를 받으시며 하늘이 주신 수를 다 하실 때까지 강건하시길 바란다.
정석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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