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겐 모든 것을, 적에겐 법을”

2025-08-12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한 인물의 말에 어제처럼 공감한 날이 없었다. “친구에게는 모든 것을, 적에게는 법을(For my friends, everything; for my enemies, the law).” 정치적 후견주의다. 자신을 지지한 일부를 진정한 국민으로 여기고 이들에겐 유·무형의 온갖 이득을 안기는 반면, 반대 진영의 이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하거나 모질게 대한다. 때론 법도 수단이다(차별적 법치주의). 20세기 초 페루 권위주의 통치자 오스카르 R 베나비데스가 전범을 보였다.

어제 사면이 그런 사례였다. 더불어민주당 총선 압승의 1등 공신인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관련자들의 족쇄가 풀렸다.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준 이(최강욱 전 의원)도, 딸에게 장학금을 준 이(노환중 전 부산의료원장)도 특사 명단에 올랐다. 또 다른 지지층인 성남시장 시절의 이재명 대통령과 인연이 있던 사업가와 얽힌 후임 성남시장(은수미)도 사면됐다. 이 대통령이 “얼마나 억울했을까”라고 동정했던 의원(윤미향)도, 진보 판사 출신으로 택시기사를 폭행한 법무부 차관(이용구)도였다. 그저 몇 명을 빼놓았을 뿐이다.

정치후견주의 보인 지지층 사면

역풍은 감내할 만하다고 본 것

위기감 없는 야당, 견제도 못해

‘국민 통합’이라고 주장하지만 여기서 ‘국민’은 지지자다. 사면만 이런 건 아니다. 최근 국회를 통과했거나 할 법안 중 상당수가 지지층을 챙겼다. 노란봉투법부터 언론 관련 법은 물론, 다가올 ‘검찰개혁’ 법안도다.

누군가 “문재인은 못 했지만 이재명은 했다”고 감탄했던데, 이런 국정이 가능한 건 역풍을 감내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호세력까지 원내 190석 가까이 되는 데다 총선은 3년 후다. 국민의힘은 찌질할 대로 찌질해져 경쟁이 안 된다. 사실 사면 때 야당도 의견을 낸다.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만났더니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쪽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 달라고 여러 차례 찾아왔다”고 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내밀했어야 할 얘기를 들켰을 뿐만 아니라 ‘볼품없는’ 이들을 부탁했다.

이 구조가 한동안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의 우군인 4050은 최대 유권자 블록이고,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또 서울에서, 지방에서 경기·인천으로 이주한 이들의 상당수는 반국민의힘 성향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당선 지역 대부분이 이제 민주당 지역이 된 이유다. 과거엔 영·호남 의석 차 때문에 국민의힘 계열이 30여 석 접고 들어갔다면, 이젠 수도권 덕분에 민주당이 80여 석 앞서 출발한다. 정당-유권자 정렬이 크게 흔들린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의 정·관계, 시민사회는 물론 기업까지 네트워크가 촘촘해졌다. 한때 ‘보잘것없던’ 이력도 이 안에서 탄탄해진다. 성남 조폭 사건 관련자가 지자체 관직을 거쳐 국무총리실 비서관까지 임명된 게 한 예다. 이젠 수도권의 국민의힘 출마자들은 (있기나 하다면) 다선 의원 아니면 장·차관 출신을 상대해야 한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선거에 진심이다. 취임 후 기자들에게 “하여튼 (여소야대 속 윤석열 전 대통령은) 힘들었을 것 같다”고 한 일도 있다. 스스로 대선 승리 연합을 해체하고 혼군이 된 윤 전 대통령과 정반대의 길이다. 이해찬의 민주당 20년 집권론은 현실이 돼 가고 있다.

국민의힘 앞엔 20여 년 정치적 황무지가 놓여 있지만 행동에선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을 쌓는 자 망한다”(정두언 전 의원)는데, 성도 아닌 ‘탄핵 반대’ ‘부정선거’ 구덩이를 파고 고개를 처박고 있다. 이들이 여권을 견제할 수 있을까. 난망이다.

그러므로 여권은 앞으로도 자신의 스케줄대로 독주하고 싶을 때 독주하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출 것이다. 그 사이 그들의 ‘국민’과 그저 국민 사이의 간격은 벌어질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냐”고 묻는 이도 있겠으나 그들의 ‘국민’이 되는 길을 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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