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 니코틴 규제, 누가 깃발을 들 것인가

2025-05-04

몸에 덜 해로운 담배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담배는 무조건 유해하다. 담배 추출물인 니코틴은 17세기 이후부터 300년 넘게 살충제로 사용되었다. 니코틴이 독극물로 이용된 첫 사건이 발생한 것은 1850년이다. 파산 후 급전이 필요했던 벨기에 백작 보카르메와 그 아내가 처남에게 니코틴을 강제로 먹여 살해한 것이다. 니코틴은 60㎏ 성인이 60㎎을 먹으면 반 이상이 사망한다. 참고로 성인용 타이레놀 1정이 500㎎이다. 담배 한 개비의 니코틴 함량은 0.05~0.25㎎이며, 이 중 약 10~30%가 흡연자의 몸에 흡수된다. 하루 한 갑씩 10년을 흡연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니코틴의 짧은 반감기(약 2시간)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죽지 않는다고 무해한 것은 아니다. 담배에는 비소·카드뮴·벤조파이렌·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해 약 7000여 종의 화학물질이 들어있고, 담배를 피울 때는 일산화탄소와 타르도 발생한다.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로 1980년대 우리나라 방송계를 평정했던 이주일님이 60세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며 남긴 유작은 금연 캠페인이었다. 그는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웠다고 한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죽음을 앞둔 그의 안타까운 외침에도 담배시장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오랜 기간 일반인들 사이에서 기호품으로 사용된 관습 때문에 알코올·카페인과 함께 중독성 화학물질 규제에서 제외되었으나, 니코틴 의존성은 마약인 모르핀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담배 몸에 해로운 건 다 알지만

규제 못하는 건 관습·세수 탓

전자담배, 제도권 밖에서 급증

합성 니코틴 시장 규제 시급해

담배 소비 주는데 전자담배는 늘어

정부가 담배 시장을 강력하게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담배에는 총 여섯 가지의 세금과 부담금이 적용된다. 애연가가 애국자일 만큼 담배는 강력한 국가 재원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지난달 18일 발표된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담배 총 판매량은 2년 연속, 궐련 담배 판매량은 4년 연속 감소했다. 반면 전자담배 시장은 전년 대비 8.3% 증가해 전체 담배 시장의 18.4%를 차지했다. 흡연의 3대 유해요소 중 일산화탄소와 타르가 발생하지 않아 ‘보다 건강하게 담배를 즐길 수 있다’는 광고로 흡연자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해소한 결과다. 세제당국의 입장에서는 반갑지만은 않다. 4500원인 궐련 담배 한 갑에 포함된 총 세금은 약 3318원(약 74%)이었지만, 전자담배에 붙는 세금은 이보다 320원가량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자담배가 궐련보다 독성이 적다는 것은 진실일까? 나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주관하는 과제의 심사 요청을 받았다. 가열담배 배출물의 독성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법을 개발하는 과제였다. ‘이런 연구는 가열담배 제조업체가 제품개발 과정에서 수행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심사하는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현행법상 제조된 담배의 유해성 심사 결과는 담배제조업 허가와 무관하다. 담배사업법은 고품질 담배를 일정한 수준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을 갖추었다고 인정되면 담배제조를 허가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제품이 다양해졌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고르듯 니코틴 함량과 맛도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그래서 더 고민스럽다. 맛과 향을 내는 물질 또한 화학물질이고, 배터리를 이용한 가열과정에는 촉매제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국민 건강 지키는 건 국가 의무

최근 정부는 세수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합성 니코틴 규제를 고려하고 있다. 니코틴은 그 기원에 따라 천연과 합성으로 분류되는데, 현행 우리나라 담배사업법은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하여 제조한 제품만 담배로 규정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합성된 니코틴은 현행법상 담배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합성 니코틴 규제가 시급한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가 올해 11월부터 시행 예정인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담배 판매업자는 2년에 한 번씩 판매 중인 제품을 정부가 지정한 분석기관에 성분분석을 의뢰하고 해당 제품에 함유된 유해성분의 종류와 함유량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공개해야만 한다. 그러나 합성 니코틴은 담배가 아니기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부터 시행 중인 국민건강증진법 적용대상도 아니기에 섬뜩한 경고용 그림이나 문구 대신 예쁜 꽃과 과일로 케이스를 꾸밀 수 있다. 심지어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다. 단지 여성가족부가 고시한 청소년 보호법 (청소년유해약물 등의 판매 대여 등의 금지)의 대상이라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무인 전자담배 판매기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신분 확인은 극도로 느슨하다.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기간이 길수록 질환 발생 가능성은 커진다. 유해물질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은 국가의 최상위 의무이다. 천연이든 합성이든 구조가 같다면 그 물질이 체내에서 결합하는 수용체나 작용 기전은 유사할 가능성이 크다. 잠재적인 위험도 같다는 것이다. 상명하복이 명백해야만 하는 군대에서도 긴급 상황에서는 ‘선조치 후보고’를 승인한다. 지금은 미래 세대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누구든 깃발 들고 나서야 할 때다.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