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신질환 살인 범죄엔 전조 증상 있었다

2025-05-05

국립법무병원장 이영렬 - ‘묻지마 살인’ 대처 방안 찾는 범법정신질환자 전문기관

지난달 22일 서울 강북구의 한 마트에서 환자복을 입은 30대 남성이 갑자기 흉기를 휘둘러 60대 여성이 숨지고 40대 여성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진주 안인득 방화 살인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 이상 동기 범죄가 또 벌어졌다. 과연 이런 범죄는 막을 수 없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심포지엄이 지난달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대한신경정신과학회의 춘계학술대회에서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치료감호하는 국립법무병원 의료진이 ‘살인과 정신질환’을 주제로 현장에서 접한 범죄의 실상을 전했다. 좌장을 맡은 이영렬 국립법무병원장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살인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성명제·박혜미 국립법무병원 전문의가 정신질환자가 의료진을 상대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례와 조현병 환자의 살인을 분석해 발표했다. 환자를 괴롭히는 망상과 환청의 공포를 실감케 한다.

살인범 과거 추적하니 음주운전·폭력 및 왕따 전력 나와

끔찍한 범행에 이르기까지 폭언·망상·흉기 준비단계 거쳐

치료받으면 안전하나 약 끊으면 모르는 사이 망상 시작

“영국처럼 정신질환 범죄자 지속적 치료·추적·연구 필요”

#사례 1

입대 후 선임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관심병사로 지냈던 A씨는 전역 후 원망과 혼잣말을 하는 증세가 나타나 외래 진료를 받기도 했다. 상태가 악화해 한 달간 모 병원에 응급 입원을 했다.

퇴원 후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던 중 망상이 시작됐다. 정부와 모 병원 관계자들이 공모해 자신을 제3차 세계대전 주동자로 만들기 위해 강제 입원시켰고 입원 중 머리 안에 소형 폭탄을 심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흉기를 준비하고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머리속에 있는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요구한 뒤 흉기로 의사를 살해했다.

#사례 2

우울증과 자살충동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B씨는 치과에서 스켈링 치료를 받은 후 이가 시리고 아프자 치과 치료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치과의사가 돈을 벌려고 일부러 나의 치아를 망쳐놨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흉기를 구입해 치과를 찾아가 의사를 살해했다.

의사 부족에 수용 정원 못 채워

이런 정신질환 범죄자들은 치료감호법에 따라 국립법무병원 등에 수감돼 치료를 받는다. 지난 3월 20일 충남 공주에 있는 국립법무병원을 찾아갔다. 계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병원은 일반 교도소나 구치소와 외관상 비슷해 보였다. 직원들의 사무 공간과 치료·수용 공간이 철저히 분리돼 있고 주요 길목마다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들과 수용 공간을 돌아봤다. 일반 교정시설과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닥에서 자는 일반 재소자들과 달리 치료감호 대상자들은 침대 생활을 하고 있다. 교도소·구치소 수용자들이 극심한 과밀현상에 고통받는 것에 비해 이곳은 공간이 넉넉했다. 수용 정원이 1200명인데 현재 수용된 인원은 900명이 안 된다. 이 원장은 “치료할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형 MRI와 CT가 눈에 띈다.

큰 유리창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섰다가 깜짝 놀랐다. 창 너머에서 수용자 10명 정도가 서성이며 사무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왜 저러는 것이냐”고 묻자 “직원들이 뭐 하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잠시 방 안에 머물러 달라고 방송을 하자 다들 방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처럼 통제에 잘 따른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발달 장애인 병동이었다. “이들의 범죄가 주로 뭐냐”고 묻자 이 원장은 “30% 이상이 살인”이라고 답한다. 깜짝 놀랐다. 이 원장은 “이 환자들의 주치의는 바로 나”라고 말했다. 원장실로 자리를 옮겨 문답을 이어갔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된 이 원장은 국군창동병원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국립정신건강센터(옛 국립서울정신병원) 의무사무관으로 공직에 들어섰다. 국립공주병원장·국립부곡병원장 등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공공 의료의 최일선을 지켜왔으며 지난해 5월 7일 국립법무병원장에 취임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경주 지진, 포항 지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밀양세종병원 화재, 진주 안인득 살인 방화 사건 등 시민들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심리지원에 나섰다.

이 원장은 자신이 이 길을 택한 건 부모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부친은 직업군인이었고 모친은 조현병 환자였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정신질환을 앓은 어머니 덕분에 운명처럼 이 길을 택했다”는 그는 “치료만 제대로 하면 별 문제 없는 조현병 환자들이 방치돼 고통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원장도 직접 주치의를 맡나.

“다른 병원 원장들은 대개 직접 주치의를 맡지 않는다. 그러나 여긴 정신과 전문의가 부족해 어쩔 수 없다.”

정신과 전문의가 몇 명 근무하나.

“현재 8명 있다. 치과 의사 2명을 포함해 의사는 모두 15명이다.”

800여 명의 환자가 있으니 정신과 전문의 한 명이 100명 이상을 담당하는 건가.

“그렇다. 내가 행정 업무도 해야 해서 70여명을 맡는다. 그러니 200명 정도 담당하는 분도 있다. 다른 의료기관보다 위험한 환자들을 만나야 하니 훨씬 힘들다. 이제 조금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환자들의 범죄 관련 기록을 보면서 마주 앉기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심포지엄 발표를 보면 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을 입원시키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의료진을 공격한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범행을 들여다보면 망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특히 가까이서 돌보는 가족이 많이 희생된다.

#사례 3

C씨는 80세 할머니에 대한 망상에 빠졌다. 귀신 같은 존재가 할머니를 먹어치우고 할머니로 행세한다고 생각했다. ‘딜루전 오브 어 더블(delusion of a double)’이라는 증상이다. 여기에 환청이 가세했다. “네 할머니를 잡아먹은 귀신이 할머니 행세를 하는 거다. 안 죽이면 네가 죽는다”는 얘기였다. C씨는 흉기로 잔인하게 할머니를 살해했다.

#사례 4

D씨는 E씨를 너무 사랑했다. 치료에 따르던 D씨가 부작용 때문에 약을 끊었다.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망상이 시작됐다. 몹쓸 병에 걸렸다고 믿었다. E씨에게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안 난다고 하자 자신이 상처받을까 봐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 D씨는 E씨에게 병을 옮길까 봐 걱정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E씨는 죽어도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해 자는 E씨를 살해하고 주변에 성경책 등을 놓았다.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살인 부른 끔직한 망상과 환청

이런 정신질환 범죄에 대한 연구가 영국과 일본 등지에서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잇따르는 ‘묻지마 범죄’에 놀라면서도 체계적인 분석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도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정신질환 범죄 분석이 부족하다고들 한다.

“영국은 살인을 저지른 정신질환자는 평생을 추적하며 관리한다. 이런 법정신의학(forensic psychiatry) 연구가 많이 발전했다. 일본도 많이 앞서있다. 관련 내용을 파악하려면 다른 나라 연구들을 살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 1년간 재임하면서 파악한 내용이 있나.

“살인 범죄자를 분석하면서 느낀 건 대부분 뭔가 전력이 있었다. 강력 범죄가 아니더라도 음주운전, 폭력, 난동 같은 전과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예측이나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인권을 중시하는 영국이 법정신의학으로 중요한 연구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면밀히 살피면 대응이 가능할 수 있다.”

약만 잘 먹어도 조현병 위험 사라져

이상 동기 살인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 현실에서 정신질환 범죄에 대한 연구와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정신적, 심리적 분석뿐 아니라 사회적 지지 체계가 잘 작동하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환자들이 치료만 잘 받아도 위험이 크게 준다고 얘기한다. 장기 연구에 앞서 당장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이 원장에게 물었다.

일반인이 정신질환 범죄의 징후를 알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은 망상 속에 나쁜 놈이 있다. 자기를 괴롭힐 수도 있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렇게 적개심을 키워 간다.”

적개심이 있다고 다 환자는 아니지 않나.

“강제 입원 기준에 자·타해 위험이 있다. 자해의 개념이 좀 넓다. 밥을 안 먹는다든가 추운 날 얇게 입고 다니는 행위가 포함된다. 그러다 물건을 부수는 등 공격성을 보이면 위험신호다.”

공격적 행동 역시 흔히 보게 되지 않나.

“왜 그러냐고 물을 때 납득이 안 가는 대답을 하는지 보라. 안인득의 경우 위에서 벌레를 뿌린다고 하지 않았나. 특히 범행 도구를 준비하면 정말 위기다.”

조현병 환자 치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하나만 제시한다면.

“조현병은 지속적 약물치료가 필수적인데 환자들이 여러 이유로 약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다. 그걸 빨리 알아채서 해결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약을 끊는다고 바로 증세가 재발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시기를 놓치면 잠을 못 자는 등의 위험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때도 그냥 방치하면 환청·망상 등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나면서 자·타해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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