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정관념으로만 보면 도시국가의 식료자급률은 거의 ‘제로(0)’일 수밖에 없다. 이를 보기 좋게 깨뜨리고 있는 나라가 있다. 싱가포르다. 2030년까지 식료자급률을 30%로 끌어올린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30 by 30’이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남성보다 여성을 떠올리는 고정관념도 그렇다. 앞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전혀 의미 없을지 모른다. 요리가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창조라면 그것은 인간 누구나 원하는 ‘웰빙의 키(key)’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푸드테크와 인공지능(AI)이 우리가 가진 상식을 하나하나 갈아치우고 있다. 푸드테크는 도시국가조차 식량 안전 보장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구원투수가 되고 있다. 식량안보를 걱정하는 국가라면 런던의 도시농원, 그리고 싱가포르의 공영주택부지 내 입체주차장 옥상의 도시농원과 시민농원, 고급호텔의 옥상농원 등 도시가 식(食)의 생산지로 변하는 모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생성형 AI는 우리 모두를 요리사로, 식의 창조자로 만드는 등 요리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 인간의 창조력이 생성형 AI로 더욱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 분야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에 셰프 출신이 적지 않은 것은 셰프가 창조하는 새로운 식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투자는 비즈니스 사이클에 따라 부침이 있을 수 있지만, 기술 진화의 도도한 방향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일본에서 화제가 된 책 ‘푸드테크 혁명’ ‘푸드테크가 바꾸는 식의 미래’는 그 변화의 트렌드를 일목요연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도시재생을 도시농업으로 바꾸는 차세대형 식물공장, 생성형 AI를 사용한 식품 개발 서비스뿐만이 아니다. 학습형 레시피에서 미래형 레시피로의 진화, 분산형 레스토랑과 푸드로봇, 3D프린터, AI로 의료 수준의 생체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까지 먹거리 혁신이 그야말로 폭발하고 있다.
식의 혁명은 연관 산업, 특히 가전산업도 뒤흔들고 있다. 스마트 푸드박스로 진화하는 냉장고, 가정용 식물 재배고, 3D프린터 기능이 달린 가정용 조리로봇이 우리 가정 안으로 속속 들어올 태세다. 언제 어디서나 조리가 가능한 가전은 우리 사회의 재난 대응력도 그만큼 키워줄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가 눈에 보이고 원하는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불행히도 가장 큰 문제는 변화를 원치 않은 기득권 세력과 이들을 보호하는 정부요, 국회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 기득권 세력을 깨야 한다. 농업과 먹거리를 바라보는 19세기나 20세기식 사고와 법, 정책은 그 자체로 미래로 가는 길목을 막는 규제나 다름없다.
당장 지금의 농림축산식품부만 해도 그렇다. 달랑 푸드테크정책과와 스마트농업정책과만으로 하루가 다르게 농업과 식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는 AI와 푸드테크의 눈부신 발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필요한 조직은 과감하게 없애고 역량을 미래의 혁신생태계 조성과 투자에 집중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미래는 우리 모두가 농부요, 요리사로 웰빙을 즐기는 세상이다. 어떤 기업도, 어떤 도시도 농업과 하나로 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21세기 농업혁명은 이런 통찰력(insight)과 선견력(foresight)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부와 국회가 미래를 보는 눈이 달라지면 한국이 푸드테크와 AI가 이끄는 창조적 식산업의 선두주자로 나설 날이 앞당겨질 것이다.
안현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