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에 의한 내란과 구속, 석방, 탄핵, 조기 대선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는 위기와 기회가 혼재되어 나타났다. 검찰, 판사, 국회의원, 관료, 언론을 보면 세상 밑바닥까지 절망하며 분노하다가도 광장에 나와 응원봉을 든 시민, 국민에게 충성하는 군인, 양심에 따라 내란수괴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공무원을 보면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된다. 곳곳에서 사회적 합의가 깨져 나갔던 지난 시간. 그 사이 진실을 추구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려는 이들의 면면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남은 과제는 대선 이후 우리에게 주어질 사회 대개혁. <월간복지동향> 5월호 기고문을 정리한 연재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해야 하는지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울산저널]이승진 시민기자= 정해구 대우교수(성공회대학교)는 먼저 “우리 정치는 거대 양당 주도 적대 정치로 일관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정치가 사법과 뒤얽혀 있다”고 진단했다. 즉 “적대적 양당 정치는 상대방 비리나 불법을 찾아내 고발하고자 하는 ‘정치 사법화’를 야기하고 여기에 편승한 법조계가 정치에 개입해서 왜곡하는 ‘사법 정치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정치권 비리나 불법은 마땅히 적발되고 처벌돼야 하지만 경쟁과 협력을 통해 국정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 본래의 역할이라면 사법과 뒤얽힌 정치는 매우 왜곡된 정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정해구 교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야당과 다수 국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간주하며 불법적 친위쿠데타를 시도했다”면서 “나름 민주정치를 정착시켜 왔던 우리는 하루아침에 정치 후진국으로 떨어졌고 이를 기회로 아스팔트 극우 대중은 거리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쿠데타를 막아내고 국회는 대통령 탄핵을 소추하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는 어렵사리 지킬 수 있었지만 헌정 체제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졌던 1987년까지 39년은 독재 통치 기간이었다”면서 “이승만 반공독재와 박정희 개발독재, 전두환 군부독재가 그것이다”고 부연했다. 반면 “1987년 민주화 이후 2025년 현재까지 38년 동안 정당 체제와 헌정 체제가 나름 정착되면서 그런대로 잘 작동해 왔던 시간이었지만 우리 앞에 떨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민주화 이후 사회 문제로 형성된 양극화와 영호남 지역주의, 저출생 고령화는 정치가 제 몫을 못 한 반증이고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 정당 체제와 헌정 체제가 위기에 직면해 있고 다가올 상황도 만만치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정 교수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위기가 닥쳤을 때 대처 방식은 사람에 기인하는 문제인지, 구조에 기인하는 문제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사람에 기인하는 문제라면 정치인을 교체해서 해결의 단초를 찾으면 되지만 원인이 구조적이라면 제도 변화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석열과 내란 세력만 솎아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 교수의 첫 번째 해법은 “정당 체제 재구축을 통해 양당제에서 온건 다당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커다란 문제가 적대적 양당 정치라면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왜 양당제가 등장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300석 가운데 254석의 지역구 의석을 소선거구 1위 대표제로 선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1위만 당선시키는 소선거구제는 주로 1, 2당에만 당선될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비례 의석은 46석에 그치고 있는데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준연동제로 연결되어 있지만 위성정당에 의해 무력화됐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양당제 정치는 분단 사회 이념 갈등과 지역주의 등 다양한 자원을 동원하면서 상호적대성을 증대시켜 왔다”면서 “양당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적 의존 관계를 나름의 영향력을 가진 다수의 유효 정당이 등장해서 무너뜨린다면 경쟁하면서도 타협이 가능한 새로운 정당 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경로 의존성이 강한) 양당제 정당 체제를 온건 다당제적 정당 체제로 바꾸기 쉽지 않지만 득표율과 의석률 차이를 줄여나가려면 구체적으로 세 방향에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소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전환(도시는 중대선거구, 농촌은 소선거구 채택 복합선거구제도 포함) △비례 의석 규모 확대 △비례 위성정당 창당 금지를 제시한다. “이 방법을 통해 투표의 비례성을 점차 높여 나가면 온건 다당제적 정당 체제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정당 간 경쟁과 타협을 촉진 시킬 뿐만 아니라 연합정치 가능성 역시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온건 다당제의 정당 체제와 대통령제 정부 형태가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면 대통령 결선투표제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두 번째 해법으로 ‘개헌’을 제시한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기관 동원과 악용을 막기 위해서는 검찰이 가진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 원칙을 헌법에 천명할 필요가 있다”면서 “감사원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국회 소속으로 이전시키던가, 헌법상 독립기관화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의 군 통수권 역시 문민 통치를 강화함으로써 적절히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 뒤 “삼권분립 실현을 위해 대통령의 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 임명권을 헌법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소야대 시 자주 발생하는 대통령과 국회 충돌을 조정하고 방지할 수 있는 헌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국무위원 제청권 또는 동의권을 가진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거나 선출하는 방안이 적극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경우 “야당 출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대통령과 국회 충돌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면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형태 관점에서 본다면 여대야소 시에는 정부·여당 주도의 대통령제로, 야대여소 시에는 이원집정제가 기능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개헌에 있어 지방분권 필요성도 강조한다. “지방소멸까지 언급되는 실정이라면 개정 헌법에 지방분권국가 지향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수도 이전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면서 “2개 조항에 그친 지방자치 장을 확대해서 자주조직권,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등이 자세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방분권을 더욱 효과적으로 실현하려면 “지역 대표 상원을 설치해야 한다”면서 “지금의 단원제로서는 지방의 요구와 이해가 제대로 대표될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 임기에 있어서는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문제는 (앞서 제시한)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축소한다면 연속 재임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 밖에도 “현행 헌법의 여러 조항이 시대 상황에 맞게 새롭게 조정되고 보완될 필요가 있다”면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기본권 확대·강화·신설,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영토조항 변경, 토지공개념을 비롯해서 조정하고 수정해야 할 경제 조항,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높이기 위한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 신설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승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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