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여름 천국 ‘타워 비치’

2025-05-23

드넓은 백사장, 누가 봐도 평화로운 휴양지다. 만약 사진에 음성지원이 된다면 끼룩거리는 갈매기, 아이스크림을 파는 상인의 외침, 펀치 앤 주디 인형극을 홍보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빈티지 수영복에 꽃무늬 원피스, 사람들의 머리 모양과 아이들의 장난감까지 1950년대 영국 런던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이 사진이 촬영된 해는 2018년. 더 놀라운 것은 저 멀리 보이는 ‘타워 브리지’다. 그렇다면 여긴 바다가 아니라 런던의 랜드마크인 템스강일 텐데 이 강 어디에 이런 백사장이 있었던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백사장이 정말 있었다. 바지선에 모래를 싣고 와 템스강변에 조성한 이 백사장의 이름은 ‘타워 비치’였다. 추억 속에 박제된 이곳을 현대로 끌어낸 이는 독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줄리아 플러튼 배튼이다. 템스강 근교에 살았던 그녀는 어느 날 가족과 함께 간 나들이에서 이 강이 품은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결심했다. 하지만 템스강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물리적으로 촬영 가능한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의상과 소품의 시대적 고증에도 세심한 연출이 요구됐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Old Father Thames’ 시리즈는 높은 몰입도와 완성도로 현대 사진 예술의 중요한 지점으로 평가된다. 템스강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서사를 영화 같은 시각적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한 시리즈 중에서도 이 작품 ‘Bathers at Tower Bridge(타워 브리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는 등장인물이 꽤 많은 편이다.

타워 비치는 1934년 조지 5세 국왕의 공식 후원 약속과 함께 개장한 뒤 1971년까지 운영됐다. 산업화와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휴가나 바캉스라는 말조차 낯설었던 런던 사람들, 특히 노동자 계층에게 이곳은 아이들과 함께 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름 휴양지였다. 귀족부터 노동자까지 옷만 갈아입으면 다 같은 백사장의 시민이었고, 짧은 여름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모두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타워 비치는 런던 사람들에게 단순한 휴가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사, 공동체적 감정이 스민 아름답던 ‘여름 천국’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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