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언론과 교육계를 중심으로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비난 여론이 거세다. 상대평가 5등급 체계와의 충돌, 자퇴율 증가, 기본 과목 미개설, 지역 간 격차, 교사 및 인프라 부족 등 운영상 문제점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교사 패닉’ ‘고교학점제 부작용’이라는 부정적 키워드가 연일 등장한다. 교육 현장 안팎에서는 제도의 전면 재검토는 물론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 문제점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교학점제가 시범 운영되던 2018년부터 이미 꾸준히 지적돼 온 내용이다. 그런데 왜 지금 다시 고교학점제가 논란이 될까. 이는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교육 당국으로 하여금 교육 정책에 다시 변화를 주도록 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올해부터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 학점(192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방식의 교육제도다. 대학처럼 개인 맞춤형 시간표를 구성하고, 자기주도 학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획일적 교육에서 탈피하는 상징적인 제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고교 유형의 단순화, 성취평가 중심의 내신 체계 확립, 지역 격차 해소, 교사와 인프라 확충 등이다.
그러나 이 전제 조건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잘 갖춰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바뀌면서 고교학점제는 철학과 현실 사이에서 어정쩡한 제도가 됐다. 고교학점제 원안은 지금과 달랐다. 문재인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준비하며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내신을 절대평가(성취평가)로 바꿔 고교 간 유불리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고·국제고·자사고 존치 방침이 유지됐다. 고교 유형이 다양한데 절대평가를 적용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고교학점제라도 내신 평가에서 절대평가와 함께 상대평가(석차등급제)를 혼용하는 방침으로 회귀했다.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미래교육자치위원회가 내놓은 2028학년도 대입제도 수정 제안이 고교학점제 논란을 다시 지폈다. 여기에는 내신 성취평가 중심 회귀, 수능 절대평가 전환,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재추진 등이 포함됐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시절 원안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다. 민주당은 ‘이제 바로잡을 기회’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 교육 현장에서는 또 다른 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학생들은 기존 2028 대입 개편안에 따라 고교를 선택했고 현재 고교학점제에 맞춰 공부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고교학점제가 아니라, 자주 바뀌는 대입 제도와 그에 따른 불확실성이다. 성취평가 전환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 입시, 내신, 수능이 제각각 움직인다면 학생과 학부모는 결국 정답을 찾기 위해 학원으로 향한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교육 정책이 바뀔수록 불확실성은 커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물론 현행 고교학점제가 직면한 과제는 산더미다. 교원 확충부터 교원 업무 경감, 공간 확보, 지역 격차 해소 등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 철회도, 급진적 개편도 답은 아니다.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하려면 학교 간의 다양성이 아니라 학교 안의 다양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실현 가능한 과제부터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은 공동교육과정 운영, 지역 간 온라인 연계 수업 등 이미 시행 중인 보완책들을 정교하게 다듬고 확산하는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 당국 정책의 일관성과 교육 주체 간 신뢰 회복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중장기 전략도 힘써야겠지만, 지금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를 안정시키는 일이 현재 교육 현장에서는 더 급하다. 고교학점제가 시작된 이유와 초심을 돌아보고 교육 정책을 학생 중심으로 펴나가기를 기대한다. 교육은 정책이 아닌 한 사람과 한 국가의 미래임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