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근로자들의 은퇴자금을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투자하지 않도록 권고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침을 풀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 친화적 행보 중 하나로 약 1경원에 달하는 미국 은퇴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길을 넓혀준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 노동부는 28일(현지 시간) 기업들이 미국 은퇴자금운용제도인 401k에서 가상자산을 투자 선택지로 제공하는데 “극도로 신중하라”고 권고했던 기존 지침을 폐지했다. 로리 차베스 디리머 미국 노동부 장관은 “(해당 지침은) 이전 행정부가 가상자산 투자를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입했던 시도”라며 “우리는 이런 과도한 개입을 철회하고 투자 결정은 워싱턴 관료가 아닌 (고용주 등) 수탁자가 내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401k는 미국 근로자들을 위한 주요 은퇴자금 마련 제도로 근로자가 401k 계좌에 월급의 일부를 저축하면 고용주가 자체적으로 설정한 한도 내에서 일정 금액을 추가로 저축해주는 제도다. 저축된 금액은 여러 상품에 투자 가능하다. 근로자는 본인의 401k 계좌 내에서 어느 펀드에 얼마나 투자할 지 결정할 수 있지만 고용주가 제시하는 선택지 내에서만 투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극도로 신중하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권고는 그동안 은퇴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에 유입되지 못하도록 막는 장벽으로 작동했다. 기업들은 법령 상 적절한 투자 옵션을 신중하게 제공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기 때문에 가상자산에 투자하도록 했다가 사고나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월가의 주요 기관들은 401k 자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옵션을 마련해 유치에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피델리티는 2022년 401k 계좌 일부를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제공한 바 있다. 배런스에 따르면 현재 401k 은퇴펀드는 총 9조 달러(약 1경2375조원)에 이른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의 일환이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5 콘퍼런스’에서 “바이든의 가상자산 탄압은 끝났다”며 “(가상자산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도구이며 나쁜 정책, 인플레이션, 차별로부터의 위험 회피(헷지) 수단”이라고 말했다. JD밴스 부통령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제화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시장 체계 구축 등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 정책 핵심 목표로 소개했다.
다만 이번 투자 억제 지침 철회가 근로자들의 투자 위험을 늘릴 것이란 우려가 뒤따랐다. 베터마켓의 법률 디렉터인 스티븐 홀은 “바이든 시대의 지침은 테라 사태 등 가상자산 겨울 동안 수백만 명의 투자자를 심각한 손실로부터 구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당시 테라와 루나의 붕괴, FTX, 셀시우스, 보이저캐피털의 파산으로 수십억 달러의 달하는 고객 자금이 동결됐다”고 짚었다.
이번 조치 이후 은퇴자금을 이용한 가상자산 투자가 곧장 급증하기 보다 서서히 증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익스피리언셜웰스의 창립자인 필립 차오는 “고용주가 투자옵션에 신중해야 한다는 법령과 가상자산 투자에 실패할 경우 고용주가 소송을 당할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