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전 우리는 두꺼운 겨울옷을 입은 채 305 강의실에 하나둘 모였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두 배나 많은 불문과 강의실이었다. 그해 처음으로 과가 만들어졌기에 선배들이 없었다. 문학과 어문학을 전공한 두 분 선생님과 다른 과 출신의 대학원생 조교가 전부였다. 우리는 마치 보육원에 들어온 것처럼 서로를 살피느라 바빴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중학생들처럼 강의실에 앉아 아(a), 베(b), 쎄(c), 데(d)를 소리 내 읽어나가며 불문과 생활을 시작했다. 좀 한심하고 심지어 없어 보이기까지 했는데 강의 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기다리며 지루함을 달랬다. 강의실 밖 서클룸에서는 북소리, 장구 소리가 들리고 교문 밖에선 최루탄이 수시로 터지던 시절이었다.
대학 전공 뒷전, 소설에만 관심
제적됐지만 문학상 당선 구제돼
그때 마음 단풍처럼 붉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초반부터 불문과에 적응하지 못했다. 내 마음이 그리고 싶은 그 무엇과 아, 베, 쎄, 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웃 국문과의 문예 창작 수업을 기웃거리고 문학회를 들락거리는 일에 더 재미를 붙였다. 시와 소설을 쓰는 일이 더 빠른 길이라고 우겼는데 당연히 1학기가 끝난 뒤 전공 수업의 성적은 바닥을 헤맸다. 학사경고를 알리는 성적표가 고향 집으로 날아왔다. 2학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사경고를 세 번 맞으면 졸업정원제에 걸려 제적되던 시절이었다. 겨울방학에 다시 집으로 날아온 학사경고 통지서를 받아들었을 때 열아홉 살의 내 마음은 칼바람 부는 겨울 들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의지하고 있었던 시와 소설도 점점 미궁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면초가가 무슨 말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2학년 개강을 하자 마침내 첫 후배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에게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더는 학사경고를 맞으면 안 된다는 것. 제적은 피해야 한다는 것. 구석에 밀어놓고 있었던 불어 공부를 해야만 했다. 술집에 술값 대신 맡겨놓는 일이 더 많았던 불어사전과 새 교재를 펼쳤다. 어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고작 1년 사이에 진도가 어마어마하게 나가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불어가 아니라 인도어를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원서를 복사 제본한 교재의 글자는 개미처럼 작았다. 프랑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원수처럼 여겨졌다. 시니피에는 뭐고 시니피앙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불문학 수업이 그나마 위안이었는데 이쪽 역시 『어린 왕자』의 번역에서 한참 멀리 떠나가 있었다. 8절지 크기의 답안지에 프랑스 시를 외워서 적고 해석을 하라거나 프랑스 소설의 어느 페이지를 번역하라는 것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어쩔 수 없이 넓고 넓은 시험지에 내 소설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바다(mer)를 메르와 메흐로 서로 다르게 발음하는 두 선생님 사이에서 나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 제목처럼 ‘열등생(cancre)’이 되어 있었다.
그 후로도 오래. 40년 뒤에 찾아간 강의실은 예전의 그 강의실이 아니었다. 조금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선생님도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었다. 40년 전 어느 날 305 강의실에서 바다를 메르로 발음하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나는 이제 불혹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열아홉 살의 나는 그가 왜 그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불혹의 나이를 한참 지나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가 사용했던 연구실 앞에 잠시 서 있었다. 열아홉의 나는 그에게서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을 배웠다. 나중에 『밤이 선생이다』를 읽었다. 그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바다를 메흐로 발음하던, 언어학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교수님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 지난 4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갖은 애를 썼으나 나는 결국 2학년이 끝나는 겨울방학에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을 당했다. 예상치 못했던 교련에서 F를 받은 게 치명타였다. 군대에 끌려갔고 3개월 복무 단축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2학년 때 쓴 소설이 대학문학상에 당선되었던 이력 덕분에 전역 후 다시 불문과에 재입학을 하게 되었다. 두 분 선생님의 덕분이긴 한데 불문과와의 질긴 인연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될지 모르겠다. 다시 찾아간 학교에서 동기들 후배들과 함께 교정을 걸었다. 연못에 비친 단풍이 붉었다. 열아홉 살이었던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게 붉었을까. 그 마음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언제 다시, 또 어떤 이유로 305 강의실을 찾아가게 될까.
김도연 소설가



![[타인적인 일상] 12월이 되기 전에](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51146/art_17632636913137_57c43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