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밀도 거대도시는 안전하고 포용적이며 회복력 있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복잡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반면, 인구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한 신도시는 경제적·사회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역사와 기능이 집중된 수도를 신도시로 옮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를 동반한다. 실제로 근현대 도시계획사에서 수도 이전의 성공 사례는 드물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 결정하면서 무산됐다. 신행정수도가 무산된 이후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로 바뀌어 2030년 인구 50만을 목표로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박물관은 삶과 문화 공존의 핵심
예산 확보 안 돼 조성사업 지연
지방의 문화불평등 완화해 줘야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로 승격돼 공식 출범하면서 외교부·국방부 등 몇 개를 제외한 중앙부처와 다수의 공공기관이 세종시로 이전했다. 하지만,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이 서울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 다수가 하루에 몇 시간을 고속열차 안에서 보내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은 서울에서 출퇴근하거나 평일에만 세종시에 머무른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그리고 서울의 아파트를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립 중인 국립박물관단지는 세종시가 단순한 ‘공무원 도시’를 넘어 삶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2016년 국제공모로 마스터플랜이 수립됐다. 어린이박물관·도시건축박물관·디자인박물관·디지털문화유산박물관·국가기록박물관 등 모두 다섯 개의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인접 부지에는 거대한 중앙공원이 조성되며, 국립민속박물관 세종관도 추가로 조성될 계획이다. 아울러 가까운 곳에는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도 들어설 예정이다. 향후 이들 다섯 개 박물관이 하나의 통합 조직으로 운영될지 독립성을 유지한 연합체로 구성될지 결정되지 않았으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어린이박물관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고, 도시건축박물관에 이어 나머지 박물관들도 차례로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현실에 맞는 건립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박물관단지 조성이 지연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예산을 수립하는 정부 부처 시각에서는 박물관단지 같은 문화 기반시설이 상대적으로 긴급하지 않은 사업으로 인식될 수 있다. 없어도 당장 큰 불편이 따르지 않고, 늦춰지더라도 정치적 쟁점이나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세종시를 포함해 쇠퇴하거나 심지어 소멸 위기의 지방 도시들이 안고 있는 핵심 문제는 서울과 수도권이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주택공급이나 입시정책 등 어느 한 부처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 부동산과 교육이 실타래처럼 얽힌 복합적 난제다. 그런데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뿌리에는 ‘문화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문화적 갈증은 서울과 수도권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론에는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국회 세종의사당 추진, 대통령 세종집무실 관련 보도가 쏟아진다.
그러나 박물관단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 방문객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에 들어갈 수 없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거나, 특별한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박물관단지인 ‘워싱턴 몰’에는 사람이 넘쳐난다. 세계 주요 수도들도 사람이 모이는 곳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집적된 곳이다. 세종시 박물관단지가 바로 그런 곳이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구상한 ‘임시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26년 뒤인 2003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부활했다. 이후 세종시는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적 사업으로 자리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전국 광역단체장 간담회에서 “지역 균형발전은 국가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마련한 새 정부의 청사진 및 국정 운영 방향과 과제는 2026년 정부 예산 편성과 직결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 수준의 박물관단지 없이는 국가적 위상에 걸맞은 행복도시가 될 수 없다. 세종시 박물관단지는 30년에 걸친 신행정수도 계획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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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