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비밀주의 탈피해야 재정향한 국민 신뢰 높아져
정부 예산안 발표 때마다 매년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자들의 질문이 있다. 하지만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는 모습을 반복한다. 바로 ‘지출 구조조정’ 내역이다. 지출 구조조정이란 정부가 신규 사업의 예산 확보 등을 위해 시급성이 낮은 기존 사업의 예산을 덜어내는 것을 말한다. 넓게는 예산체계 전반을 재구조화하는 것으로도 정의된다.
실제 지난 3년간 예산안 브리핑을 보면 기재부는 각종 이유를 들어 지출 구조조정 내역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2022년에는 “국회 논의에서 증감이 있을 수 있다”며 이해를 구했고, 2023년에는 “예산이 삭감돼서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과 재정이 늘어나서 혜택을 보는 사람 간에 불일치가 있다”면서 지출 구조조정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역시 경직성 경비를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등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만 설명했을 뿐 상세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지출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사업과 삭감된 예산의 액수까지 다 파악하고 있음에도 민감한 부분이란 이유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기재부는 예산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후 국회에 제출한 예산서를 참고하면 지출 구조조정 내역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산서의 증감 내역을 확인해 감소된 부분 중 상당수가 지출 구조조정에 해당하니 대조해보라는 것이다(2023년 8월 추경호 전 부총리). 하지만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예산체계에서 지출 구조조정 내역을 시민들이 발라내기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깝다. 사업 예산이 일반·특별회계 외에 각종 기금에서 충당되는 경우도 많은 데다 프로그램 사업과 내역 사업의 관계 등도 알고 있어야 정확한 비교 대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재부의 비밀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재부는 2023년 56조4000억원, 지난해 30조8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했지만 기금 돌려막기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한 바 있다.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하면 세입경정(세입예산 수정) 등을 통해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 국회에서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게 ‘정공법’이지만 이를 외면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2023회계연도 결산 보고서에서 “정부 독자적으로 (세수결손) 대응방안을 결정·집행하는 것은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심의·확정권 측면에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의 상세 내역과 방향을 공개하는 건 국민을 예산 결정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적극적 재정운용을 위한 지출 구조조정체계 구축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 방향은 궁극적으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며 재정당국은 부처 간 조율을, 국회와 청와대는 방향성을 검토하고 확정해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달 말 발표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재명정부의 정책 방향 전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정표로 주목된다. 인공지능(AI) 대전환 등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사업에 예산이 대규모로 편성되고, 그간 소외됐던 복지 예산도 확충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 사업을 확대하려면 줄여야 하는 사업도 존재해야 하는 만큼 지출 구조조정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장밋빛 지출 계획만 밝힐 게 아니라 어디에서 얼마나 예산을 줄였는지도 함께 공개해야 재정당국을 향한 국민의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간 꼭꼭 숨겼던 지출 구조조정 내역을 친절히 국민에게 설명해주는 것, ‘국민주권정부’를 천명한 이재명정부가 할 일이다.
이희경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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