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의 문단 사람들] 백년래의 문학 연구와 비평, 김윤식

2025-11-02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타계한 지 꼭 7년이 되었다. 필자가 선생을 곁에서 직접적으로 모시게 된 것은 2007년 사단법인 이병주기념사업회가 발족하면서부터였다. 이 사업회의 출발을 위한 발기인대회에서 선생과 함께, 이병주 작가의 고향인 경남 하동 출신의 전 검찰총장 정구영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이어령 선생이 고문, 임헌영·전상국·김춘미·여상규 등의 인사가 부대표, 이문열·김인환·안경환·김언호 등의 인사가 운영위원, 그리고 필자가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그로부터 김윤식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2018년까지, 필자는 선생과 지근거리에 있었고 늘 아버지를 대하는 심정으로 모시려고 애썼다.

선생이 문학 단체의 수장을 맡은 것은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유일했다. 함께 이 조직을 구성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했지만, 이병주라는 작가가 선생과 유다른 관계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예화를 들면, 이는 선생 자신이 직접 토로한 대목이다. 이병주, 김윤식 두 분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여 이병주 장편소설 '비창'에 대해 토론하는데, 김 선생이 그 소설 속 주인공인 술집 마담의 행적에 당위성이 없다고 신랄히 비판하자, 그에 대한 이 작가의 응수였다. “김 선생, 나는 나이 육십이 넘었어도 아직 말과 행동이 오락가락하는데, 30대 술집 주인이 안 그러고 어떻겠소?” 김 선생 자신은 아무 말도 더 못했다고 했다.

선생은 필자가 10년간 회장을 맡았던 한국문학평론가협회의 세 분 고문 중 한 분이었다. 이어령·유종호 선생과 함께 고문으로 모셨는데, 그냥 이름만 걸어놓고 있지 않았다. ‘평협’에서 선생을 모시고 한 차례 중국과 바이칼 학술여행을, 그리고 ‘이병주’에서 또 선생을 모시고 한 차례 이병주 작가가 학병으로 머물렀던 중국 소주(蘇州) 지역의 답사 여행을 다녀온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귀국 편 상해 공항에서, 선생과 홍기삼 평론가 등이 대합실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발을 뻗고 있던 장면이 눈앞에 떠오른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선생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분으로 홍기삼 선생이 유일하다. 함께 노래방을 가자고 권유한 이도 그분이 유일하다. 당연히 선생은 노래방을 가지 않았다.

어느 해 여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미주한국문인협회 강연 차 출국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조교 편에 편지 하나를 보내왔다. 봉함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중국 당대(唐代) 불후의 시인 왕유의 이별 시 한 편이 얇은 편지지에 자필로 적혀 있고, 말미에 “가다가 주막을 만나거든 목이나 축이고 가소”란 전언이 잇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노잣돈’ 100달러 지폐가 들어 있었다. 선생이 어디 이런 데 세세히 신경을 쓰는 분이던가. 필자는 감격으로 목이 메었고, 돌아오는 길에 선생이 드시지도 않는 양주 한 병을 사 들고 왔다. 참 모자라고 바보 같은 응대가 아닐 수 없었다. 선생은 서신에 “가족 있는 그 양간도(洋間島)가 그대에겐 바로 남산이 아니겠소”라고 적었다. 선생의 소중한 추억이 결부되어 있는, 내게는 실로 명편의 시다.

下馬飮君酒 問君何所之 君言不得意 歸臥南山陲 但去莫復問 白雲無盡時

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 어디로 가려는가 그대에게 묻자/ 세상 일 모두 뜻 같지 않아/ 남산에 돌아가 누우려 한다 하네/ 그렇다면 여러 말 말고 그저 떠나게나/ 거기는 언제나 흰 구름 입으려니

선생은 오전에는 서재에서 글을 쓰고, 오후에는 학교에 나와 강의하고, 저녁에는 동서고금을 왕래하며 책을 읽는 시간의 황금분할을 지켰다. 이는 마치 한 수도자가 도의 궁극을 찾기 위하여 열의를 다해 수도하는 자세와도 같았다. 그래서 미망인 가 여사는 선생의 영결식에서 윤시내의 노래 〈열애〉를 함께 듣자고 했던 것이다. 미망인의 말에 의하면 선생의 타계(他界) 후 한참 동안 서재의 책상에는 갓 도착한 신간 문예지와 원고지와 펜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이는 그야말로 선생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는 말이다. 선생이 떠난 빈자리를 온전히 메울 문필은 백년래(百年來)에 목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세출의 문학 위인, 김윤식 선생을 이 땅에서 면대할 수가 없으니 긴 탄식으로 이 글을 마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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