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후 신설 학교 이름에도 ‘이리’
원칙·일관성 없는 교명, 주민 혼선
교명 정비, 지역사회 ‘논의의 장’을

학교에만 남았다. 강산이 세 번씩이나 바뀌면서 모두 잊혀지고 사라졌는데 유독 학교에서만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다. 익산의 옛 지명인 ‘이리(裡里)’ 이야기다. 전주·완주 통합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2025년, 이웃 도시 익산은 시·군 통합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해 도·농 복합도시로 새출발했다.
당시 통합도시의 이름은 별 논란 없이 ‘익산(益山)’으로 정해졌다. 익산이라는 지명이 훨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고, 익산군 주민의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또 이리가 예로부터 사악한 존재로 여겨져 온 야생동물 늑대의 다른 이름이고, 이리역 폭발사고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점도 ‘이리를 버리고 익산을 선택’한 이유다. 통합 직후 각 기관 및 단체, 그리고 공공시설의 명칭에 사용된 지명이 이리에서 익산으로 일제히 바뀌었고, 여기저기서 쓰인 고유명사 이리가 익산으로 속속 대체됐다. 그렇게 이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학교가 떠나는 이리를 붙잡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역 대표성을 담기 위해 지명을 그대로 옮겨 교명으로 정한 이리초·이리중·이리고가 그렇다. 이들 학교는 그렇다 쳐도 지금 옛 이리시 지역 대다수의 학교명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리모현초·이리북일초·이리영등중·이리남성여고 등이다. 통합 전 시 지역 학교는 대부분 교명에 지명인 ‘이리’를 덧붙였다. 반면 옛 익산군 지역의 농촌학교는 익산중·익산고를 빼고는 교명에 지명 익산이 포함된 곳이 없다. 그래서 시·군 통합 이후 시 지역 학교에서 교명에 접두사처럼 일괄적으로 붙은 옛 지명 ‘이리’를 아예 빼버리거나 익산으로 바꿔도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런데 한 곳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이해하기 힘든 교명도 있다. 1995년 통합 익산시 출범 이후에 문을 연 이리백제초등학교(2000년 개교)와 이리마한초(2000년)·이리부천초(1997년)·이리영등초등학교(1997년 개교)는 잊혀지고 있던 지명 ‘이리’를 굳이 되살려내 교명에 붙였다. 신설 학교명에 지명으로 이리 대신 익산이 쓰인 것은 통합 6년째인 2001년, 익산어양초등학교부터다. 이와 별도로 이리여자중학교는 2000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교명을 익산지원중으로 바꿨다. 교명의 원칙과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도시개발이 한창이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이 지역에 잇따라 신설된 학교 이름에 이리와 익산이 혼재하면서 시민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2010년과 2014년, 각각 통합의 역사를 쓴 창원(마산·창원·진해시)과 청주(청주시·청원군)의 사례를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 창원시에도 옛 지명 마산·진해를 여전히 교명에 쓰고 있는 학교가 적지 않다. 마산중앙초·마산제일여중·마산용마고·진해남산초·진해용원고 등이다. 하지만 익산과는 많이 다르다. 창원시에는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진해구 등 옛 지명이 현재의 행정구역명에 그대로 살아 있고, 교명에 옛 지명을 사용하는 학교도 모두 해당 행정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또 청원군과 통합한 청주시의 경우에는 현 행정구역상 청원구에 위치한 청원초와 청원고 2개 학교만이 교명에 청원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다.
교명은 학교 구성원과 학부모·동문회 등 지역사회의 합의를 통해 변경할 수 있다. 옛 시 지역과 군 지역 학교를 이름으로 애써 구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교육당국에서 교명 정비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통합 익산시 출범 30주년을 계기로, 먼저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면 어떨까.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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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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