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항일전쟁(중·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항일신극(抗日神劇)’이라고 불리는 B급 단편드라마가 무더기 철퇴를 맞게 됐다.
23일 중화망 등에 따르면 중국의 방송·인터넷·게임 감독기구인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은 항일전쟁을 주제로 한 단편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광전총국의 지침은 항일신극을 겨냥했다. 신극은 기괴한 줄거리를 가진 단편드라마 형태의 항일물을 풍자하기 위해 나온 신조어다. 2015년 전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쿵푸와 경공술을 사용하며 일본군을 물리치거나, 가죽 재킷 차림에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전장을 휩쓰는 장면 등이 신극이라고 조롱받는 사례다. 여성 스파이가 일본군 병사와 음담패설을 주고받다 몸 속에 숨겨둔 수류탄을 던지는 장면이 담긴 드라마도 있다.
중국 당국의 콘텐츠 제작 지침에 어긋나는 저속한 상상을 담은 영상물이 ‘항일 드라마’라는 간판을 달고 유행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주류 콘텐츠가 진지하고 아름답고 교훈적인 내용을 다루기를 요구받기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은 단편드라마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뇌 빼고 보는 드라마’라는 별명이 있는 단편드라마는 B급 정서의 해방구 정도로 여겨져 상대적으로 표현이 자유로웠다.
신극에는 황당하고 유치하다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일부 작품은 영상미나 심리 묘사 등에서 수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사적 고증은 엉터리지만 판타지물로는 봐 줄만하다는 평가를 듣는 작품들도 등장했다. 신극을 조롱의 표현이 아니라 일종의 장르물 명칭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생겨났다. 반면 저질 콘텐츠로 쉽게 돈 벌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다.
단편드라마 시청자 수가 지난해 6억명을 돌파하는 등 시장 규모가 커지자 당국이 이 업계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재벌총수’ 등 위화감을 조성하는 제목을 금지하는 등의 지침이 마련됐다. 오는 9월 3일 전승절 80주년을 앞두고 항일신극을 겨냥한 지침까지 나왔다.
지침에 따르면 드라마에 역사적 사실과 상식에 어긋나는 도술이나 현대물의 요소가 등장해서는 안 된다. 아군은 초인으로 적군은 아둔하고 어리석게 그리는 유치한 줄거리도 안 되며, 가족과 국가에 대한 사명감 없이 개인의 복수를 강조하는 창작 패턴도 끊어내야 한다고 광전총국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