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요. 야외 박물관 같아요.”
정동 전망대에서 덕수궁의 초겨울 풍경을 내려다보던 조이(싱가포르)는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겨울 햇빛이 고궁의 지붕 위로 잔잔히 스며드는 풍경을 보며 그는 한국 근대사가 지닌 고유한 흐름을 천천히 음미하는 듯했다.


K컬처 너머 K예술여행
지난달 29일 서울 시청역과 맞닿은 정동길 입구에는 30여명의 외국인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외국인 전용 예술관광 프로그램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아트 인 서울’은 단순한 명소 관람을 넘어, 서울을 예술도시로 자리매김시키려는 취지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K팝·K드라마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오래된 선입견을 깨고, 그들의 시선을 예술과 지역 문화로 확장해보겠다는 의도다.
재단은 약 한 달 동안 삼청동·남산·한남·성북동에서 국악 원데이 클래스, 단청 만들기, 전통공예 체험, 길상사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코스를 시범 운영했다. 정동 프로그램은 그 마지막 순서로, 덕수궁 돌담길과 구 러시아공사관 터를 잇는 길을 걸으며 도시가 품어온 시간과 결을 따라가도록 구성됐다.

낯선 만남이지만, 공통의 관심사는 마음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을 나서며 문화해설사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참가자들은 “그럼 우리도 떨어져서 걸어야 하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에도 참가자들은 자신의 나라와 비교하며 의견을 나누고 한국 문화와 도시의 고유한 분위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들을 이어갔다.
삼청동과 성북동 코스까지 참여했다는 카 호우 신(홍콩)은 고종이 1년간 머물렀던 아관파천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을 둘러본 뒤 “한국 근대사의 긴장감이 피부로 전해졌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서울을 깊이 이해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역사 전공 유학생 리히(베트남) 역시 “현대 도시 안에서 전통과 근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이 인상적”이라며 “다음에는 다른 동네도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졌다”고 소망했다.
이날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단순히 사진을 남기는 수준을 넘어 건축 맥락, 시대 배경, 지역 이야기까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관심사는 ‘빨리 보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건축·역사·공연을 연속적으로 체험하는 느린 참여형 예술관광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참가자들은 국립정동극장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생애 첫 국악 뮤지컬 <청사초롱 불 밝혀라>를 기다리며 ‘소품’으로 받은 초롱불의 의미를 듣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조선 시대의 웨딩플래너’라는 설정 아래 전통 혼례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은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몰입하게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류신은 “사랑받고 축복받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 한국어를 잘 모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배우들이 객석을 오가며 관객을 ‘하객’으로 참여시키는 연출에 뤄지아이(싱가포르)도 “인생 경험”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서울은 화랑 수 세계 4위, 공연장 수 세계 4위, 국공립 미술관·박물관 수 세계 7위 등 예술 기반시설은 풍부한 도시다. 그러나 외국인 대상 예술관광 상품은 체계적 정리가 부족해 실제 접근성이 낮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이 가운데 진행된 아트투어는 도시의 결을 ‘걷고 보고 느끼는’ 여행 방식으로 전환한 좋은 선례가 됐다. 서울의 골목과 전시·공연장이 하나의 서사처럼 연결되고 참가자들은 도시 예술 생태계를 현장에서 촘촘하게 체감했다.
올해 ‘아트 인 서울’ 프로그램은 정동 코스를 끝으로 운영을 마쳤다. 서울관광재단은 이번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내년에는 동선과 체험 콘텐츠를 확장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준비 중이다. 예술관광 민관협의체인 서울 예술관광 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콘텐츠 유통과 브랜드 인지도 확립을 위한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일상과 예술을 엮어낼 또 다른 투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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