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 공군에서 퇴역한 F-4 전투기의 별명은 ‘팬텀’(유령)이다. 1969년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이 기종이 국내에서 한때 ‘도깨비 전투기’로 불린 이유다. 팬텀은 1958년 첫 비행 이후 생산이 끝난 1981년까지 총 5195대가 만들어져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군용기로 꼽힌다. 1960∼1970년대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통하며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 일본, 이스라엘 등에서 주력 전투기로 쓰였다. 동서 냉전이 첨예하던 시절 소련(현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서방 하늘을 지킨 존재가 바로 팬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21 사태가 일어났다. 이는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맞서 한국군 방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듬해인 1969년 팬텀 4대가 처음 한국 공군에 인도됐다. 1975년 월남(남베트남)이 월맹(북베트남)에 패망하고 베트남 전체가 공산화하며 국내에서 안보 위기감이 고조됐다. 국방력 강화 필요성을 절감한 시민들은 앞다퉈 정부에 성금을 헌납했다. 그 돈으로 팬텀 5대를 추가 구매했다. 해당 전투기들에는 특별히 ‘방위성금 헌납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50년 넘게 한국 영공을 지킨 팬텀은 2024년 6월 임무 수행을 마치고 퇴역했다. 이를 기념해 공군수원기지에서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이 실시됐다. 수많은 군용기들이 활주로 위에 정열해 밀집 대형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코끼리 무리의 이동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열의 선두에는 퇴역을 앞둔 팬텀 8대가 섰다. 훈련 현장을 찾은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대한민국을 수호해 온 팬텀, 그리고 팬텀과 고락을 같이해 온 ‘팬텀맨’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는 말로 팬텀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이 오는 20일부터 야외전시장에서 퇴역한 F-4D 팬텀 기체를 공개한다. 이는 국민 성금으로 구입한 ‘방위성금 헌납기’ 도장을 재현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대한민국에서 위장 무늬 팬텀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전쟁기념관이 유일하다”며 “동아시아에서 가장 세부적으로 당시 고증이 재현된 기체”라고 밝혔다. F-4D 옆에는 예전에 미국 공군이 쓰고 우리 측에 이관한 F-4C 팬텀 기체도 함께 전시된다고 하니 둘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라 하겠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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