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미래에도 소중한 가치

2025-05-11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실제는 관념을 만들어낸다. 이 관념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행하는 의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라는 행사가 있어 5월이면 자연히 가정의 달이라는 관념으로 확장되는 것과 같다.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둘 사이 아이가 탄생함으로써 가정은 비로소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 되며,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공동체가 된다. 가정은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가족 간에 보이지 않는 규범이 생기고 모두가 이를 지키려고 한다.

5월은 가정의 달, 가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치 부드러운 둥지를 안고 있는 것처럼 포근하다. 물론 5월은 날씨가 따뜻하고 만물이 생장할 수 있는 좋은 환경 조건을 갖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근함, 따뜻함을 떠올리며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을 5월의 봄처럼 인식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로는 이중섭이 있다. 그가 처한 삶의 시대적 상황이 가족을 유토피아로 관념함으로써 그의 작품에 투영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은 자연스럽게 이중섭 미학의 근간이 되었다.

서양에서 가족을 즐겨 그린 화가로는 장 프랑수아 밀레가 있다. 밀레는 농민의 아들로서 프랑스 그뤼시 마을 출신 농민 화가다. 그는 농촌이라는 대지의 포근한 정서와 프랑스 시골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겨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밀레의 작품들은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 ‘양치는 소녀’ ‘씨 뿌리는 사람’ ‘낮잠’ 등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이다. 농촌의 일상을 보여주는 밀레의 작품은 꾸밈없고 담백하다.

밀레가 그린 가족 그림을 살펴보면, 아버지는 수레를 끌고 어머니는 두 아이를 태운 수레를 밀면서 밭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밭에서 돌아오기’, 막 걸음을 떼는 아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농민 부부를 그린 ‘걸음마’, 아기에게 죽을 식혀서 먹이는 ‘아기 죽’, 아이들이 돼지를 끌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돼지 잡기’, 어머니가 남자아이를 오줌 누게 할 때 누나가 몰래 보는 ‘조심하는 어머니’ 등 밀레의 가족 그림은 농촌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일상에 은근한 해학이 섞여 있어서 더욱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가족 사랑이라는 주제로 보면 이중섭과 밀레는 가족주의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시공간을 넘어서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다룬 것도 비슷하고, 가족의 일상을 그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새와 더불어 아이가 오줌 누는 장면을 그린 이중섭 작품 ‘새와 애들’과 아기가 오줌 누는 장면을 그린 밀레 작품 ‘조심하는 어머니’도 매우 흥미로운 유사성을 갖는다. 이중섭 작품에 평화로움이 있다면, 밀레 작품에는 평온함이 묻어난다. 그러나 이 둘의 차이란 평화로움은 이상적인 표현방식이고, 평온함은 현실적인 표현방식일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소망의 관념이며, 현실적인 것은 현실에서 누리는 삶의 실제이다.

우리에게 가족은 미래에도 여전히 희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아이들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는 불안한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안정적인 미래는 실제의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가정의 달은 찾아올 것이다. 가족주의 화가 이중섭이 보여준 평화로운 날들과 밀레가 보여준 평온한 일상은 다가오는 미래에도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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