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은 혁신을 가속화한다. 반대로 담합은 혁신을 막는다. 사전적으로 담합은 '판매자 간에 가격, 생산량, 거래 조건 등을 제한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행위'를 뜻하며, 이는 경쟁을 왜곡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한다.
국가 차원에서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 의료, 금융, 제조 등 다양한 산업이 이미 AI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으며, 글로벌 차원에서 가장 큰 파급 효과를 보이는 분야 중 하나는 법률 서비스다. 해외에서는 이미 AI 법률 서비스가 상용화돼 변호사의 역량을 보완하고 국민의 법률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변호사들은 자신이 어떤 AI를 사용하는지조차 공개할 수 없다. 고객에게 AI 기반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저 내부 업무 효율화를 위해, 그것도 의뢰인이 알 수 없도록 조심스럽게 활용하는 것이 전부다. 왜 이런 제약이 존재하는 것일까?
핵심에는 변호사법과 이를 근거로 제정된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칙'이 있다. 변호사법은 ①비(非)변호사의 법률사무 수행 금지 ②변호사와 비변호사의 협력 금지 ③허위·과장 광고 금지 ④광고에 관한 세부 사항을 대한변호사협회가 정하도록 위임하고, 이를 위해 광고심사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①은 변호사의 고유한 업무 영역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② 역시 오랫동안 법조계를 병들게 해온 법률 브로커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된다. ③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부당한 경쟁을 막기 위한 취지이고, ④는 이러한 금지 규정을 보다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변호사법에서 위임한 권한에 따라 변협이 자체적으로 제정한 광고규칙 가운데 납득하기 어려운 조항이 있다. '변호사는 소비자가 인공지능 등 프로그램을 직접 사용하게 하거나, 소비자에게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광고를 할 수 없다'는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칙 제5조 제2항이 바로 그것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실제로 AI를 활용한 상담 서비스를 의뢰인들에게 제공한 일부 법무법인이 변협의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
이 조항은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공공성 침해'나 '불공정 수임질서'와 무관하다. 단순히 AI를 활용한 서비스 자체가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둘째, 신기술 도입을 막는 담합으로 비칠 수 있다. 의료계는 새로운 장비 도입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려 왔다. 반면 법률 시장은 AI 활용이 차단되어 혁신이 지연되고 있으며, 그 피해는 의뢰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은 명확하다. 변호사가 AI를 활용하는 데 불필요한 제한을 두지 말고,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주체는 변호사와 법무법인으로만 한정하는 것이다. 즉, 변호사가 기술도입과 책임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변호사법 제23조의 위임 범위를 수정해 '광고에 관한 세부 사항을 대한변호사협회가 정하되, AI 활용에 불필요한 제한은 두지 못한다'는 단서를 추가하는 식으로 개정하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현실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 보호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변호사가 신기술을 활용해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경쟁은 혁신을 만든다. AI를 활용한 법률 서비스도 예외가 아니다. 변협이 신기술 도입을 막는 것은 담합과 다름없다. 국민에게 더 나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AI를 도구로 활용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I와 변호사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AI 도구를 활용한 변호사들 간의 경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 혁신이 가능하다.
이재원 넥서스AI 대표 jwlee@nexusa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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