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옹 자녀들 입건
고령 아버지 속여 서류에 서명, 배상금 수령
“피해자 본인 뜻 확인됐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생전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동의하며 배상금을 받았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제출했던 서류가 자녀들에 의해 위조됐다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배상금을 받은 피해자들이 고령인 만큼 본인의 뜻이었는지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광주서부경찰서는 사문서위조 및 행사 혐의로 이 할아버지의 자녀 A씨와 B씨를 지난 25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 할아버지가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고 배상금 수령을 위해 제출한 문서가 자녀들에 의해 위조된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1월 105세로 사망한 이 할아버지는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배상금 수령을 위한 신청서류를 전달했다. 재단은 이 서류를 바탕으로 지난해 10월30일 이 할아버지에게 3억원 상당을 지급했다.
하지만 당시 제출된 서류는 할아버지의 두 자녀가 위조한 것이었다. 1924년생인 이 할아버지는 서류를 작성할 당시 104세의 고령으로 알츠하이머 증상 등으로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A씨와 B씨는 아버지가 입원한 요양병원에 찾아가 배상금 수령을 위한 서류를 ‘병원 관련 서류’라고 속여 서명하도록 했다. 이렇게 위조된 서류는 요양병원에서 기다리던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재단 관계자에게 전달됐다.
경찰 조사에서 자녀 1명은 서류를 위조한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할아버지가 생전에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점도 서명 위조의 증거로 판단했다.
이 할아버지는 윤석열 정부가 2023년 3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금을 한국 기업의 출연금으로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내놓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난 이 할아버지는 1943년 1월 일본 이와테현에 있는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로 끌려가 임금을 받지 못하고 고된 노역에 시달렸다. 2005년 2월 일본제철 후신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2018년 10월30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본인 의사에 반한 허위 서류로 배상금이 지급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동안의 지급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재성 변호사는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할지 여부는 당사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만큼 과연 그동안 당사자들의 의사가 제대로 확인됐는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면서 “정부 정책이라는 핑계로 성과를 위해 밀어붙인 것은 아닌지 관련자들에 대한 직무감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