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2.5차원(2.5D) 엔터테인먼트’가 벤처업계 새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충성도가 높은 가상 캐릭터에 실제 인물의 매력을 더한 하이브리드형 지적재산권(IP)에 글로벌 자본이 먼저 움직이고 국내 자본들도 뒤따르고 있다.
18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SBVA)는 일본의 2.5D 기반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 ‘우타이테(Utaite)’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중국 텐센트가 주도한 이번 시리즈B 라운드의 전체 투자 규모는 5500만 달러(약 755억원)에 달한다. 누적 투자 금액은 한화로 1270억원에 달한다. VC들이 너나할 것 없이 큰 돈을 베팅하는 데는 우타이테가 가진 IP 잠재력이 꼽힌다. 2차원(2D) 가상 캐릭터가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이 가상 캐릭터의 모델로 삼은 아이돌이나 크리에이터가 팬미팅, 콘서트 등 오프라인 활동을 이어가는 식이다. 이에 우타이테는 하이브리드 IP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았다.

서브 컬처 시장이 성숙한 일본에서는 2.5D IP 캐릭터들이 이미 플레이보드 등이 집계하는 아이돌, 캐릭터 등 톱 퍼포머 순위 상위권을 장악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 서브컬처 시장 규모는 약 7000억엔(약 6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돌, 애니메이션, 동인지(만화, 일러스트) 등 핵심 카테고리 중 상당수가 하이브리드 IP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우타이테에 투자를 집행한 이정우 SBVA 선임 심사역은 “일본에는 이미 상장된 버추얼 유튜버 운영 기업이 두 곳이 있고 영업이익률이 20~30%에 달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다”며 “일본 팬덤 시장의 높은 고객 충성도와 롱테일(주목받지 못하는 다수가 핵심적인 소수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형태) 구조를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로도 투자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하이브리드IP는 새롭게 뜨고 있는 분야다. 패러블엔터테인먼트 소속의 6인조 버추얼 아이돌 그룹 ‘이세계아이돌’은 지난 달 서울 고척돔에서 콘서트 ‘이세계 페스티벌 2025’를 진행했다. 10CM, 선미 등 실제 가수들과 함께 이세계아이돌이 무대를 장식했다. 팬들의 환호가 가장 컸던 이세계아이돌의 무대는 1시간 분량의 단독 콘서트 형태로 마련됐다. 단체곡과 멤버별 솔로곡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한편 중간중간 팬들과의 소통도 놓치지 않았다. 이세계아이돌은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터블벅에서 진행한 굿즈의 누적 펀딩액이 88억원을 돌파해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3만5600명이 참여했는데 1인당 평균 후원금액은 24만7000원에 달할 정도로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업계에서는 이세계아이돌의 성공 사례가 계속해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이브리드IP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AI를 통한 더빙 기술과 모션 캡처 등 기술에 주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하면 팬들이 버추얼 캐릭터를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고 몰입도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동영상 강의 필기 소프트웨어 기업이었던 비브리지는 지난해부터 AI 기반 다국어 더빙 기술로 피벗팅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유튜브 삼프로, 매미킴 채널 등에 더빙 기술을 공급하고 있는데 크리에이터들이 해외 팬들과 소통하기 위한 콘텐츠 제작에도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 업계 관계자는 “서브컬처가 하이브리드 IP와 만나면서 24시간 소통할 수 있는 나만의 아이돌이 나타난 셈”이라며 “AI 기술 발전으로 하이브리드 IP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