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이 깎이고, 공사 기간은 줄고, 위험은 아래로 내려간다. 그 틈에서 숙련은 빠지고, 고용은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로 이동한다. 건설 현장의 불법·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반복적인 공사비 삭감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안전, 품질, 고용 환경 전반을 동시에 저하시킨다.
만약 단가 후려치기 대신 ‘적정임금’이 지급된다면 건설 현장은 어떻게 변할까.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발주한 한 건설 현장은 적정임금제가 적용된 사례다. 이 현장을 연구해온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공사비 삭감이 건설 현장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진단한다. 단가가 반복 삭감되고, 공기 단축과 속도 압박이 가해지면서 안전과 품질이 동시에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는 적정임금제가 적용될 경우 임금 하한선이 설정돼 단가 후려치기와 하도급 단계에서의 삭감 여지가 줄어들고 숙련 인력 이탈이 줄어들며 시공 품질과 안전 대응이 개선된다고 분석했다.
적정임금제는 일부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대개는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아예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발주처의 의지가 있더라도 관리·감독이 미흡한 상황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12월 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가 ‘모범사용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비정규·일용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행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효율성과 예산 논리에 가로막힐 수 있고, 실질적 적용을 위해서는 발주·감독 체계 전반의 정비가 필요하다. 공공과 민간 간 임금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교한 제도 설계도 중요하다.
지난 6월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국민소득 중 ‘노동자 몫’은 3년 만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국민계정에서 피용자보수비율(옛 노동소득분배율)은 67.9%로 전년(68.7%)보다 낮아졌다. 임금노동자의 몫이 확대되던 흐름이 꺾였다는 의미다. 노동의 대가가 작아지는 흐름 속에서 정부는 ‘모범사용자’가 돼 다시 노동의 의미를 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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