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나쁜 나라” “혼내 줘야 해요”라는 어린 손주가 무심코 던진 말에 좀 놀랐다. 공룡을 포함하는 동물 이야기를 하면서 툭 나온 말이었다. 모든 동물이 다 나쁘지 않듯이 일본이 다 나쁜 건 아니고, 나쁜 사람만 나쁜 거라고 얘기해 주었지만 아이의 태도는 꽤 완강했다. 태도는 어떤 대상에 대해 ‘좋다’ ‘나쁘다’와 같은 감정을 대변하고 행동의 가이드가 되는 것이니 어른들 용어로 바꾸면 강한 ‘혐일’이다. 객관적인 자료를 접하지 못한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일본에 대해 미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웃으로 사는 게 숙명인 한·일 양국이 좋은 관계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다.
지난 17일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공식적으로 또 최초로 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타계했다. 그는 1995년 8월15일 일본 패전 50년을 맞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에서 “일본은 국책을 잘못 세워 전쟁의 길로 나아가서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고,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미래에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여기에 다시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밝힌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정치인은 무라야마와는 다른 언행을 일삼는다. 최장수 총리(3188일)를 기록한 ‘아베’는 무라야마의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고 했다(2013년 4월22일). 침략의 정의는 학계나 국제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궤변도 남겼다(2013년 4월23일). 그는 일찍이 2007년 3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이나 뒷받침하는 것은 없다”는 말을 포함해 망언을 일삼았다.
지난 21일 여성으로서 최초의 일본 총리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는 아베와 신념과 행동을 같이하는 일본 우선주의 언행을 서슴없이 해온 정치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의 언행이 일본의 제국주의가 저지른 수탈과 고통의 가해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 양식에 부합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일본 정치인들이 무라야마의 담화 정신을 잊지 않고, 일본의 세계적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피해자가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반성하는 마음가짐을 실행할 때 한국과 일본의 우호 관계는 물론이고 어린아이가 ‘일본은 나쁜 나라’라는 감정을 가지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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