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합의만 받아내면 감형, 예방은 뒷전···중대재해법 유죄 판결 중 실형은 8%뿐

2025-12-16

법 시행 이후 유죄 70건 중 징역 실형은 6건

집유는 87%···일반 형사사건의 두 배 넘어

“예방 투자 대신 합의로 대체하려는 문제 우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전체 유죄 선고 사건 중 실형은 8%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과의 합의를 법원이 감형 요소로 반영해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형 흐름이 이어지면 기업이 사고 예방보다 사고 발생 후 합의 비용에 더 투자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산업재해를 예방하라는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에 반하는 상황을 법원이 조장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는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양형기준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마련됐다.

주제발표를 맡은 범선윤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2022년 1월27일 법 시행 이후 지난 9월30일까지 유죄 판결이 내려진 138건(자연인 70건, 법인 68건)을 분석했다.

이 기간 피고인 70명에게 선고된 유죄판결 중 징역형 실형은 6건(8.57%)에 불과했다. 집행유예 선고가 61건(87.14%)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일반 형사사건의 집행유예율(36.5%)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실형을 받은 6건은 징역으로 평균 46.7개월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징역은 평균 12.8개월로 대폭 낮아졌다. 실형과 집행유예를 합친 67건에 선고된 징역은 평균 15.9개월로 집계됐다.

징역형을 받지 않은 피고인 3명에 대해선 2000만~30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양벌규정에 따라 68개 법인도 벌금형을 받았다. 1년 사이 하청업체 노동자가 3명이나 사망한 선박수리업체 삼강에스앤씨이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를 제외하고 67개 법인이 선고받은 벌금 액수는 평균 8789만원이다. 법원은 법인에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회사의 규모, 경제력 등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에는 산업재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예고됐지만, 유족과의 합의가 감형 요소로 반영되면서 양형이 완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 70명 중 69명은 유족과 합의했다.

범 부장판사는 “실형률이 8.57%로 나타난 이유는 유족과의 형사합의를 통해 유족이 법원에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사정이 주요 양형요소로 참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움 참석자들은 이런 양형 흐름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퇴행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범죄에 대한 집행유예율이 87.14%에 달하는 상황은 기업 행동을 심각하게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며 “합의에 따른 유족 측 처벌불원 의사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면, 기업들이 예방에 필요한 안전 투자를 사후 합의 비용으로 대체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감형하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23명이 숨진 아리셀 화재 사건에서 법원은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합의를 하면 기업이 선처를 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재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유족과의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선고된 최고 형량이다.

법원이 쌓인 판례를 토대로 양형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지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는 “양형인자로서 유족과의 합의에 지나치게 큰 효과를 부여하기보다 ‘재발방지조치의 이행’을 병행해야 한다”며 “법원조사관의 양형조사를 통해 재발방지조치 이행 여부와 그 내용을 충실히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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