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웨이 둥관 연구개발(R&D) 캠퍼스에는 유럽 고성을 연상시키는 하얀 대리석의 건물이 있다. 이곳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모티브로 지은 화웨이의 대형 도서관이자 교육센터다. 화웨이가 끌어 모은 기술 인재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견문을 넓힌다.
서적 11만권이 병풍처럼 둘러싼 이곳에는 기술뿐 아니라 역사·철학·예술 등 전세계 20여가지 언어로 된 인문서적들이 빼곡하다. 직원 모두가 넓은 시야와 다양한 시각을 가지라는 경영 철학이 반영된 공간이다.
최근 이곳을 방문했다가 다소 씁쓸한 경험을 했다. 10만권이 넘는 서적 중에 한국 관련 도서는 고작 5권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20세기 한국 가곡의 역사, 한국사 연구 50년, 해방 50년의 한국 철학 등 최신 학술 동향과 동떨어진 내용이 전부였다. 화웨이 최고급 인재들이 미국과 유럽, 일본 관련 서적 수천권을 탐독하며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익힐 때 한국은 관심 밖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를 애써 외면하지만 그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미국 빅테크 전유물로 여겨진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에서 선두그룹에 진입했다. AI 칩셋과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드론 등 최첨단 산업 가치사슬 전반에서 약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가 경쟁하고 있지만 기업의 개인기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국내 기업이 인재 유출로 신음할 때 화웨이는 천재소년 프로젝트로 키워낸 세계 정상급 인재들이 기술 혁신을 이끌었고 공대 열풍 속에 쏟아져 나온 엔지니어 군단은 영웅 대접을 받으며 혁신 생태계를 살찌웠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저가 공세, 기술 유출에 기인한 결과라고 애써 폄훼하고 무시한다면 결과는 주력산업의 붕괴 뿐이다. K-테크는 생존과 도태의 기로에 섰다. 정부 주도의 일관된 지원책과 절박함에서 나오는 혁신 의지, 이를 주도할 상위 1% 인재 양성 시스템을 이제 우리가 본받을 차례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