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학적 불확실성”
최근 세계 경제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다. 수출 규제·관세 정책·전쟁 등이 야기한 글로벌 시장 위험요소로, 반도체 산업 역시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향후 실적을 전망할 때 “불확실성이 높아 예측이 조심스럽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불확실성에 대한 피해는 진행형이다. 우선 미·중 갈등으로 인한 수출 규제 타격이 크다.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그나마 중국 시장에서 팔렸으나, 미국의 수출 규제로 1분기에 이어 2분기도 성과를 못내고 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도 마찬가지다. 고객 확보에 난항을 겪는 와중에 첨단 공정에서는 중국 반도체 기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AI 반도체 칩 수요가 늘었지만 미국 규제에 막혀서다.
관세는 설상가상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반도체 관세를 예고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이미 50% 관세를 예고한 구리는 가격이 급등, 반도체 공급망에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현지 투자에 대한 보조금 등 지원 정책도 유효할지 의문이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SK하이닉스도 막대한 투자를 추진 중이나, 갈피를 잡기 어려운 미국 정책에 제대로 된 사업 계획조차 마련이 어렵다.
불확실성은 기업에 직격타지만, 기업 스스로 해결하는 건 어렵다. 정치·외교·안보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이 국가 전략 무기화하면서 각국 정부의 개입이 가속화됐다.
반도체 산업계에 드리운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은 지속돼야한다. 새 정부의 정치·외교·안보 역량을 평가 받을 첫 시험대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소통으로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야 한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