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에이지테크 서둘러야

2025-12-18

꿈꾸는 카메라. 방송 녹화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본 앞 강연 제목이다. 카메라가 꿈을 꾼다고? 아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카메라다. 사진 속 아이들은 우물 앞에서 물통을 이고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구도와 빛 처리가 예사롭지 않아 보는 순간 내셔널 지오그래픽 화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카메라를 처음 만져 본 아이들이 찍은 사진이었다. 그것도 값싼 일회용 카메라로.

과도한 부양 부담, 청년 짓눌러

민간에 떠밀다 노인 빈곤 악화

기술 활용해 노년 관리 나서야

렌즈 너머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식수가 부족해 아이들은 물 긷는 데 하루 3~5시간을 썼다. 여자아이들은 가사 노동까지 떠안아 미래를 꿈꿀 기회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한 봉사단체가 내놓은 해법은 ‘학교 안 우물 짓기’였다. 덕분에 아이들은 물 긷는 시간 대신 배움의 시간을 얻었다. 14년이 흘렀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이제 의젓한 성인이 되었으리라. 과연 부모 세대와는 다른 삶을 일구어냈을까. 그들의 현재가 자못 궁금하다.

학교 안 우물 짓기는 레버리지 포인트(leverage point)다. 레버리지 포인트란 작은 힘으로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시스템의 급소를 말한다. 봉사단체는 식수난과 교육 부재 문제를 별개로 보지 않았고 우물 파기로 연결고리를 공략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물 긷기는 등교로 이어졌고, 노동은 학습으로 치환됐다. 복잡한 난제일수록 본질을 찌르는 한 점, 레버리지 포인트가 필요하다.

카메라 렌즈를 한국 사회로 돌려보자. 우리 앞에도 버거운 난제가 놓여 있다. 바로 코앞에 닥친 초고령사회라는 현실이다.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은 냉혹하다. 2025년은 노인 1000만 시대가 본격화하는 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7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청구서는 이미 날아들었다. 보험 진료비의 45%가 노인 의료비로 나가고 간병 파산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이 무거운 짐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몫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물 긷기에 시간을 저당 잡혔듯 우리 청년들은 부양의 늪 앞에서 미래를 저당 잡힐 위기다. 지금은 생산연령(15~64세)인구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2050년이면 1.3명이 노인 1명을 떠안아야 한다. 추락하고 있는 잠재성장률과 고갈되는 연금 앞에서 청년의 미래는 압류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인의 마음은 편할까. 우리 연구팀이 노년층 심층 인터뷰에서 마주한 현실은 이랬다. 응급 상황 시 자녀에게 자동 알림이 가는 장치가 도움될지 물었다. 모두가 그 필요성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누구에게 연락할지에는 반응이 갈렸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어르신들은 바로 자녀에게 연락하라고 했지만, 여유가 없는 분들은 손사래를 쳤다. 자식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두 번 세 번 당부하며.

이유는 한결같았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했다. 내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자식에게 알려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빈손이라면 연락 자체가 곧 청구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여유가 없는 이들이 선택한 비상 연락망은 혈육이 아닌 친구나 구청 직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도 방문간호사,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과 생활지원사들이 골목 곳곳을 누비며 어르신 곁을 지키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업무가 과도하게 몰린다는 점이다. 방문간호사가 1인당 평균 400명을 담당하고 있다. 방문은커녕 전화 돌리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바로 이 빈틈이 에이지테크(Age Tech)가 작동해야 할 레버리지 포인트다. 에이지테크는 AI·로봇 등 최신 기술을 적용해 획기적으로 돌봄 비용을 줄이고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실시간 감지 기술부터 노후 자산관리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고령화 시대의 필수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에겐 뼈아픈 과오가 있다. 관련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 이 영역은 민간이 육성해야 한다며 정부가 예산을 끊었다. 노인 빈곤율 OECD 1위인 나라에서 구매력 부족한 노인에게 등을 떠민 결정은 현장의 절박함을 읽지 못한 실책이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기술 혁신은 민간이 주도하되, 그 기술이 빈곤 노인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주는 건 정부의 몫이다. 이곳의 예산은 단순 비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중물이다.

내 몸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환경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우물 팔 장비는 이미 준비되었다. 청년이 부양해야 할 짐을 덜고 노인의 외로움을 기술로 살뜰히 챙기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파야 할 진정한 학교 안 우물이 아닐까.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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