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복의 세계경제 Story] 밀수 이야기 ⓵

2025-05-19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2년전 여름, 해상밀수와 밀수장물 등을 소재로 한 '밀수' 란 영화가 상영되어 흥행에 성공하였다. 전직 세관공무원인 필자도 가족과 같이 흥미롭게 관람하였다.

밀수(密輸)란 세관의 공식적인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몰래 물건을 들여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세관원을 속이고 몰래 들어오는 기상천외한 각가지 밀수수법들, 또 세관 주변에 전설처럼 구두로 전해 내려오던 밀수기법 등은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많은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시킬 것이고, 더군다나 세관역사 전문가인 전직 세관직원의 자문을 받았으므로 소재상으로도 흥행 성공의 필요조건은 갖춘 영화였다.

실무행정 통계상으로는 밀수는 밀수입과 밀수출로 나뉘고, 밀수입은 직접 밀수입과 부정수입, 시중단속으로 나뉘며, 직접밀수입에는 금지품 밀수, 선원·승무원 밀수, 여행자 밀수, 정상화물가장 밀수로 나뉘고, 부정수입에는 관세포탈, 부정감면, 부정환급, 수입조건 위반 등으로 나뉜다.

실제로 관세국경 현장에서는 밀수범들과 세관직원들 사이의 영원한 두뇌싸움으로 다양한 형태의 밀수 테크닉이 진화하고 치밀해진다.

밀수범들은 죽기 살기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밀수 테크닉을 혁신시키고, 세관직원들은 국가적 사명감을 가지고 국가경제 방위, 관세포탈 적발, 국민 건강/안전 등 보호를 위하여 필사적으로 밀수를 잡아낸다.

이 와중에 세관 수사관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간단하게 여행자밀수의 수법을 예로 들자면, 밀수품이 든 가방을 미리 선별하여 종이라벨을 붙여 놓고 세관 검사대에서 검사를 하려하니 이를 눈치챈 여행자가 이 라벨을 떼어내 옆의 선량한 여행자의 가방에 붙여 놓고 자신은 밀수품이 든 가방을 들고 유유히 공항세관을 빠져 나간다든지, 이 수법이 무용지물이 되도록 종이 라벨 대신 플라스틱 태그를 붙여 놓았더니, 태그가 붙은 원 가방보다 더 큰 검은 돼지백을 준비했다가 뒤집어 씌워 세관직원 눈이 플라스틱 태그를 못 찾도록 하는 등이다.

밀수는 옛부터 세계 각국에서 성행했으며 국가 재정체제를 부인하므로 중범죄에 속하며, 18-19세기 유럽에서는 살인보다 중죄로 처벌하였다.

제국주의 시절에는 노예도 밀수했는데 중동의 노예무역선에선 감시하는 영국 해군의 군함이 가까이 오면 바다에 추를 매달아 빠뜨렸다고 한다.

당시 영국 해군에게 노예 밀수를 들키면 노예들의 숫자에 따라서 벌금이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벌금을 내기는 싫으니 차라리 그냥 노예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여 없애는 것이 더 돈을 아끼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옛부터 멕시코 국경을 통한 마약밀수, 콜럼비아등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육·해상 마약밀수가 국가적 고질적인 문제이다.

지금은 밀수에 관해 우리 사회가 둔감한 편이지만, 1960년대 우리나라의 5대 사회악은 “밀수, 도벌, 마약, 탈세, 폭력”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범죄로 밀수가 꼽혔다. 망국적인 사치심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밀수는 국내에 부족한 물품을 조달하는 방편으로 자리 잡았고 주된 유통 경로인 부산 ‘국제시장’과 서울 남대문 ‘도깨비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밀수품도 유행(트렌드)이 있는데, 우산, 재봉틀, 화장품, 라디오(1950-1960년대), 전자제품과 금괴(1970년대), 시계류와 보석, 밍크 코트류 등 고급 사치품(1980년대), 온갖 ‘짝퉁’ 의류와 시계, 잡화(1990년대), 한약재와 비아그라(2000년대) 등이다.

밀수 행태로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남해안 일대를 무대로 조직적인 해상밀수인 일명 ‘특공대 밀수’가 있었다. 소형목선에 탱크 엔진을 설치하여 30노트(시속 55.6㎞) 이상의 속도로 달려서 그 당시 10노트 정도의 세관감시선이 밀수선을 잡기란 어려웠다.

1970년대에는 수출면장 없이 현지에서 외국으로 출항할 수 있는 활어선을 이용해 다량의 밀수품을 싣는 방식(해상박치기), 혹은 다량의 밀수품을 싣고 육지에서 가까운 바다 속에 투하한 뒤 해녀를 동원해 운반하는 수법(해녀특공대)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외국산 제품의 높은 세율을 피하고 싶은 여행자 밀수가 크게 늘었다.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통관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컨테이너를 이용한 중국산 참깨 밀수, 한·중 여객선 보따리 상인들의 농산물 밀수가 성행했다.

2000년대 들어 나타난 일명 ‘커튼 치기’ 밀수는 컨테이너 앞쪽에 일반 무역물품을 적재하고 뒤쪽에 밀수품을 숨기는 방식이었다. 앞쪽의 물품을 모두 내려놓기 전에는 밀수품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커튼치기’, ‘심지박기’, ‘진공충전’ 수법의 밀수 시도가 관세청의 콘테이너 X-Ray 검사시스템 도입으로 무용지물이 되자 이제는 X-RAY 검사기로는 가려낼 수 없는 '품명위장' 수법이 등장했다. 마른 고추를 냉동 고추로 신고하듯이 화물 자체를 다른 품목으로 속여 신고하는 수법이다.

여행자 밀수와 관련하여서는 전문적인 속어들이 있는데, '따이공'(代工) 이란 중국어로 짐 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좋게 표현하면 한중소무역상인. 인천국제여객터미널과 평택국제여객터미널이나 시내 면세점에서 각종 농산물, 면세품 등을 취급한다. 현재는 고도로 기업화 또는 조직화되어 중간책과 운반책 등으로 임무가 또 다시 나눠진다.

‘보따리상’은 여행자 밀수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과거 일본항로에서는 주로 나이 많은 여성분들이 많이 활동하였다.

개인 여행자에게 허용된 면세범위에 맞춰서 담배나 양주, 식자재등의 대리통관을 한다. 수입선다변화가 적용되던 시절의 MADE IN JAPAN 완제품,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의 게임기 등이 이렇게 들여온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에는 콜롬비아인 보따리상들이 콜롬비아로부터 마약인 코카인과 에메랄드 보석을 보따리 밀수한 후 국내 판매책에게 매도하고(5배 마진),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서 질이 좋은 한국산 짝퉁 운동화, 넥타이, 의류등을 구입하여 다시 콜롬비아로 보따리 밀수하는(마진 5배) 수법이 있었다.

‘SOFA 밀수’ 는 해외 주둔 미군이 누리는 면세혜택(*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에 의거)을 이용하여 주로 미군 PX(군부대 매점)와 미군 APO(군사우체국)등을 통해서 전자제품, 각종 식료품, 면세주류와 면세담배 같은 물건을 밀수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이 있었을 때 한국에서 판매가 금지된 외래품을 밀수하여 이것을 남대문시장 같은 곳에서 암거래하기도 했다.

밀수는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조직성, 전문성, 지능성, 국제성을 갖춘 영리범이라는 특징이 있고, 자연범이 아닌 법정범이다, 밀수범의 경우 대체적으로 점조직으로 단체화 되어 있고, 일반 재산범죄와는 다르게 단순한 경제적인 빈곤타개가 목적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경제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범행하는 영리범에 해당한다.

이러한 밀수행위, 밀수범들에 대한 조사와 처분은 전적으로 세관공무원이 한다(관세법 제290조). 경찰(일사경이라 칭한다)이 아닌 세관(특사경)에서 조사를 담당한다.

밀수에 대하여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제5조). 이것은 내국세 사범과는 다른 점이다.

현재 관세청에는 특사경 약 450여명의 조사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관세법, 대외무역법, 외국환 거래법, 상표법등 수출입 범죄에 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관련 정보를 가지고 관세사범에 대한 형사처벌 및 통고처분을 하기 때문에, 사건이 신속하고 일률적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밀수는 범죄의 죄질이 좋지 않다고 여겨지고, 특가법이 적용되는 경우 처벌 수위가 엄청나게 강해질뿐더러, 추징금이나 가산세등 각종 예상치 못한 세금이 사후적으로 부과될 경우가 많아 밀수범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준다.

[프로필 ] 이대복 (사)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 세계관세기구(WCO), 동국대,외국어대 등에서 자금세탁방지론 강의

• 저서 :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

• 경영학 박사

• 2005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94년 WCO 사무총장상 수상

• 2010.06~2011.07 관세청 차장

• 2008.09~2010.05 인천공항 본부세관장

• 2003.~2008. 관세청 감사관, 조사국장, 통관관리국장

• 2006.~2007. 미국 관세청(CBP) 파견근무

• 2002.~2003. 미국 관세/무역전문로펌(Sandler, Travis & Rosenberg, P.A.) 고문

• 1998.~1999. 천안세관장

• 1988.~1989. 구미세관 수출(환급)과장

• 1986.~1988. 관세청 심리기획관실 마약·담배·SOFA 밀수 담당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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