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서 한층 추위도 강해집니다. 소나무·사철나무와 같은 상록수들은 아직 초록을 유지하지만, 낙엽수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잠에 들어가지요. 그런데 낙엽수이면서도 아직 푸른빛을 유지하며 강인함을 뽐내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름도 생김새도 특이한 벽오동이에요. 보통은 새로 나온 어린 가지는 녹색을 띠지만 한 해를 지내고 두 살이 되면서부터는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색을 띠게 되는데 벽오동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줄기 색이 녹색입니다. 잎은 오동나무와 닮았고 푸른빛을 띠니 푸른 오동이라며 ‘푸를 벽(碧)’자를 써서 벽오동(碧梧桐)이라고 부르게 됐죠.

벽오동나무는 얼핏 오동나무와 비슷해 보이지만 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종입니다. 오동나무는 현삼과(능소화과)에 속하고 학명은 ‘Paulownia coreana’입니다만 벽오동나무는 벽오동과에 속하고 학명은 ‘Firmiana simplex’입니다. 린네의 분류기준에 따르면 ‘계-문-강-목-과-속-종’으로 순으로 내려가는 생물 분류 체계에서 종이나 속 정도도 아니고 과(family)가 다르다는 것은 꽤나 멀다는 거죠. 벽오동나무의 큰 잎과 줄기 뻗는 모양이 오동나무와 비슷해서 벽오동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일 뿐 사실 두 나무는 어떤 관계가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오동나무를 말하면 주로 벽오동을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오동나무 관련 이야기들과 혼용돼 헷갈리기 쉬워요. 이를테면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결혼할 때 그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줬다는데, 이때 벽오동을 심었다고도 하고 참오동나무를 심었다고도 하죠. 벽오동은 봉황이 둥지를 튼다고 해서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졌는데요.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문장으로도 유명하고, 일본 내각의 총리대신을 나타내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일본 정부에서 쓰는 오동나무 문장은 자세히 보면 잎은 벽오동 같기도 한데 꽃의 모양은 오동나무 같아요. 500엔 동전의 문양은 참오동나무입니다. 옛날 사람도 벽오동과 오동을 헷갈린 것은 마찬가지인 듯해요.

오동나무로 가구와 악기를 제작하듯 벽오동나무도 가구와 악기 제작에 사용합니다. 둘 다 생장이 빨라서 목재 생산량도 많죠. 최근 기후위기로 인해 다양한 국가에서 탄소중립을 이루려고 생장이 빠른 나무를 심는데, 오동나무와 벽오동나무 모두 활용됩니다. 벽오동나무는 관상용으로도 좋고 공해에 견디는 힘도 좋아 가로수·공원수·정원수로 많이 심어요. 벽오동나무의 껍질은 섬유나 약용으로 이용되고,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하기도 하며, 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면 피로가 풀린다고도 합니다.
어른들이 즐기는 놀이 중 화투놀이가 있죠. 화투에도 벽오동이 있는데 혹시 알고 있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봉황이 등장하는 화투패가 있습니다. 흔히 ‘똥’이라고 말하는 11월 상징 패죠. 왜 하필 똥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할 텐데, 똥이 아니고 사실 ‘동’, 오동나무의 동(桐)이에요. 동이라는 발음을 세게 해 똥이 된 거죠. 왜 벽오동이 11월을 상징할까요? 사실 일본에서는 12월을 상징합니다. 우리나라에서 11월이 된 것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기온이 따뜻해서 실제로 겨울에 벽오동 잎이 푸르게 살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1월까지는 잎이 싱싱하게 달려 있는 걸로 짐작해 볼까요.

11월이면 벽오동나무 주변에 특이하게 생긴 열매들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돛단배의 돛처럼 생긴 날개가 달렸고 씨앗이 두서너 개 붙어있죠. 요새 판매하는 과자 중에 00칩, 00스낵이란 이름으로 감자로 만든 넓적하고 조금은 휘어진 그런 과자 모양을 닮았어요. 그 생김새만 보아도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작전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열매뿐 아니라 꽃 등도 생김새를 자세히 보다 보면 그 작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자기에게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저마다 그에 맞게 디자인되어 있지는 않을까요? 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한번 스스로의 쓰임새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생활에세이]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51146/art_17632689560498_754bf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