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와이너리] 디아드 청담은 왜 '다이소 청담'이라는 오명을 썼을까

2025-09-09

[비즈한국] 어떤 일이든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럴듯한 조감도나 청사진이 있더라도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실현되지 않는 정도를 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열화되어 화제가 된 건물이 있다. 요지 중의 요지라는 청담동 1번지에 선 회원제 클럽 ‘디아드 청담’ 얘기다.

디아드 청담의 외관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수차례 변경됐다. 맨 처음 모습은 수직 흐름이 강조된 평범한 고층 건물이었다.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그만큼 변수가 별로 없는 견실한 안으로 보였다. 그런데 도중에 이화여대 ECC 등을 설계한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안으로 180도 바뀌었다.

도미니크 페로가 그린 오리지널 설계안은 트로피처럼 돋보이는 조각품을 만들려고 했다는 말 그대로 천연 대리석이 여기저기 돌출된 역동적인 느낌이다. 면과 면이 서로 나뉘고 합쳐지면서 형성되는 모습이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새롭고 화려하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건물의 성격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디자인을 받아든 시행사는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페로는 파격성을 줄인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그것도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달성되지 못했다. 그는 결국 건물에서 손을 떼고 자기 이름을 빼라고 통보했다. 창작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조치인 셈이다.

청담동 1번지에 우뚝 선 디아드 청담은 마치 거대한 각목이나 장벽처럼 보인다. 일각에선 디아드 청담이 아니라 ‘다이소 청담’​ 아니냐는 조롱까지 등장했다. 건물 자체가 대지 크기에 비해 높은 편인 데다 주변 건물들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더욱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저층 파사드다. 다른 면이 지나치게 플랫해진 반면, 이 부분만 원안의 흔적이 우툴두툴 어설프게 남았다. 대리석이 아니라 플라스틱 덩어리를 쌓아 놓은 것 같다. 어린 시절 레고 블록으로 이와 비슷한 것을 만들고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완성작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담과 더불어 강남의 두 대로가 교차하는 입지 조건 때문에 부지 매입에만 1000억 원이 넘게 들어갔다. 아무리 자금력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시작부터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이 때문에 공사비 절감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건축가가 설계부터 준공에 이르는 전 과정에 밀착하여 원래 콘셉트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쉽지 않은 현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디아드 측은 여러 이해관계와 준공기한이 뒤섞여 혼종이 된 건물을 페로의 타협안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구상이지만, 기초가 부실한 상태에서 외피만 바꾸는 작업으로 과연 어디까지 분위기 전환이 가능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프로젝트를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수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케이스는 좀 심한 감이 있다. 현실적 조건 때문에 철학이 실종된 건물은 멤버십 회원 모집 조건인 운영 주체만의 철학에 부합하는 상위 0.1% 자산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디자인과 상징성이 뛰어난데도 전후 사정에 휘말려 철거되는 건물이 있고, 모든 것이 부족한데도 거대한 바퀴처럼 굴러가는 진행 과정을 멈출 수 없어 끝까지 살아남아 준공되는 건물이 있다. 사정이 건물을 죽이고 살린다. 그 사실이 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씁쓸하게 한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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