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뢰 갉아먹어" vs "中, 6·25 적국"…대선판에 미·중 끌어들이는 후보들

2025-05-19

18일 열린 첫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미국과 중국이 공방의 소재로 소비됐다. "미국은 신뢰를 갉아먹고 있어 오래가지 못할 것", "중국은 6·25 전쟁 당시의 적국" 등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는 발언이 이어졌다.

"美, 믿음·신뢰 다 갉아먹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에 대해 설명하다 "미국의 기본적 전략이 미국 국민들에게도 수용이 잘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처럼 소프트파워를 다 갉아먹으면서 미국이라는 신뢰, 믿음 이런 걸 다 갉아먹으면 오래 못 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어느 시점에선 제동이 걸릴 텐데 그때까지 잘 견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우리가 맨 먼저 나서서 서둘러서 협상을 조기 타결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대미 수출 감소 등이 지표로 뚜렷하게 확인되는 가운데 '버티는 게 협상 전략'이라는 취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중 간 '관세 휴전' 뒤 경제 대국을 중심으로 신속한 외교적 접근법이 올바른 길인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면서도 이는 중국 등에만 제한적으로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입장을 바꾸도록 자기 출혈을 감수하는 '치킨 게임'을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버트 호프만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블룸버그에 "경제 규모가 크고 미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낮은 나라만이 (중국처럼)강경 대응이 가능하다"며 "대다수 국가에게 미국과 맞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이 먼저 양보할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전략은 다소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몰빵·올인 안 돼…거리 둬야"

이 후보는 이날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완전히 몰빵, 올인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중국에도 셰셰(謝謝, 고맙다) 하고 대만에도 셰셰 하고 다른 나라하고 잘 지내면 되지, 대만하고 중국하고 싸우든 말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이른바 '셰셰 발언'의 취지를 유지한 셈이다.

실제 이 후보는 이날 대만 유사시와 관련, "대만과 중국의 분쟁에 우리가 너무 깊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며 "현상을 존중하고 우리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트럼프가 '한국이 북한하고 싸우면 어때. 우리는 둘 다 셰셰하면 되지' 하면 곤란하지 않으냐"고 꼬집었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실용외교를 강조하는 취지로 보인다. 다만 이는 국제 질서가 이미 미·중을 필두로 뚜렷하게 진영화된 마당에 한국이 진영을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와 두루 잘 지낼 수 있다는 인식이 현실적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후보는 이날 "중국, 러시아와 굳이 적대적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불법 파병까지 감행한 북·러 간 군사 동맹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中, 우리 쳐들어왔던 적국"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핵심 주변국인 중국을 적대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우려를 낳았다. 김 후보는 "6·25(전쟁) 때도 중국 공산당은 우리를 쳐들어와서 우리 적국이었지 않습니까"라며 "미국은 우리를 도와줘서 대한민국을 지킨 당사자 아닙니까. 미국과 중국이 같은 수준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어 "중국은 북한하고도 가깝지만, 6·25 때 우리 적국이지 않았습니까"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 후보의 발언이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후 한·중은 1992년 국교를 정상화했고 지금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한·미 간 혈맹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70년 전 전쟁까지 끌어와 중국을 '적국'으로 묘사할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후보는 앞서 선거 유세 등에서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독재자'로 칭하며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동일 선상에 놓는 듯 한 발언으로 중국을 지나치게 적대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 후보는 이날 북핵 대응과 관련해 "비핵화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태"라며 "핵 균형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로 최근 국제사회 일각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가 갈수록 흐려진다는 걱정이 나오는 가운데 그가 비핵화에 회의적인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건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가장 앞장서서 지키고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할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가 이런 입장을 밝힌 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핵 균형" 발언 역시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핵무장을 시사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후보가 앞서 전술핵 재배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 검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우라늄 농축·플루토늄 재처리 기술 확보, 미국과 협의를 통한 핵기술 축적 등을 언급했던 맥락과 맞물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셈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한·중 관계 개선 흐름과 미래지향적 협력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중국 관련 발언은 보다 신중하고 균형 있게 해야 한다"며 "또 미국이 한국의 핵심 동맹인 점을 고려하면 트럼피즘에 대한 공개 비판 역시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 기간의 후보들의 모든 발언은 외교 자산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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