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생 개띠, 한필석입니다” 도봉산 50년차 등산 마당발

2025-11-05

트레킹 전문 혜초여행사 홈페이지 검색 창에서 ‘한필석’ 이름을 치면 트레킹 상품이 주르륵 뜬다. ‘한필석 동행, 메라피크(6476m) 등정’ ‘한필석 동행 산티아고 도보 순례’ ‘한필석 동행 알프스 3대 미봉’. 멋모르는 사람들은 ‘유명한 유튜버인가’ 할 수도 있지만, 그는 가이드 중 한 명일 뿐이다. 58년생 개띠로 나이도 많다. 퇴직 후 제2의 직장에서 8년째 전문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을 넣은 트레킹 상품이 즐비하다. 남다른 타이틀이 있기는 하다. 한국 최초의 등산학교인 한국등산학교의 교장을 3년째 맡고 있다. 그와 같이 가면 무엇이 다를까.

“여럿이 산을 가면 서로 짜증 내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는 늘 긍정적입니다. 또 질겨요. 한번 해서 못한 데는 계속 시도하고요. 가이드로선 정보와 지식 전달은 물론 편안함을 주죠.” 그와 여러 번 해외 트레킹을 했다는 한 사람이 말했다. 같이 있으면 편안한 동행, 최고의 동행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생 때 산에 빠져

지난달 30일 이른 아침, 한필석(67) 교장과 도봉산을 갔다. 지하철 1호선 도봉산역에서 도봉산장(해발 약 450m)까지 3㎞. 천천히 걸으면 왕복 두세 시간, 가을 아침 산책길로 좋은 코스다. 도봉산장은 한국등산학교 교정이 있는 곳이다.

그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북한산·도봉산을 올랐다. 당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집에서 도봉산에 가려면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야 했다. 늘 혼자였지만, 외롭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이미 초등생 시절부터 수도권 근교를 다니기 좋아해 사춘기 때는 솔로 산행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50년 전, 도봉산 초입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현재 아웃도어 장비점과 식당 등 상가가 늘어서 있지만, 당시엔 막걸리를 파는 식당 몇 곳이 전부였다. 대신 계곡마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 못 할 풍경이다. 또 당시 도봉산은 지금처럼 울창한 숲이 아니었다. 10여 년 수령의 나무가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덕분에 산 아래서부터 정상을 볼 수 있었다. 계곡 삼겹살 파티 대신에 맑은 물과 푸른 숲을 얻은 셈이다.

제기동 까까머리 소년이 혼자 산에 간 계기는 예사롭지 않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낚시를 했어요. 한번은 담임 선생님과 배를 빌렸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이었죠. 그런데 그 후로도 혼자 낚시하는 걸 좋아했어요. 어느 날 남양주 삼패 쪽 저수지에 있었는데, 석양에 서쪽을 보니 북한산 인수봉이 발갛게 물들어 있는 거예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잊혀지지 않은 풍경이죠. 그때 ‘아, 나는 저곳에 가야겠구나’ 마음 먹었어요.”

중2 때는 혼자서 설악산 대청봉(1708m)에 갔다. 혼자 시도한 두 번은 실패하고 결국 그해 겨울 한국등산학교 동계반에 들어 올랐지만, 당시 학생은 그뿐이었다. 중학생으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산꾼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당시 키가 지금과 같은 170㎝ 가까이 됐다.

“겁 없이 다닐 수 있었던 건 어머니 덕분이었던 듯해요. 중·고생 때 청계천 장비점에서 만난 형들과 어울려 산행도 하고 바위(암벽등반)도 했는데, 저 빼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라 힘들게 바위를 하고 내려와도 소주 한 병 살 돈이 없었죠. 그 얘기를 어머니께 했더니, 어머니가 제 용돈에 보태 ‘형들 소주도 사드리라’면서 돈을 더 주는 거예요. 중학생한테 말이죠. 어린 아들이지만, 저를 꽤 믿으셨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평생 산에 다닐 수 있었죠.”

1974년 한국등산학교 1기로 입회한 그는 중대부고·동국대 재학 중에 꾸준히 산에 다녔다. 하지만 당시 산꾼들처럼 히말라야 원정에 매달리진 않았다. 사업으로 열심히 돈을 벌고 그다음에 산에 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업엔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서른 즈음에 ‘월간 산’에서 근무하는 선배의 권유로 ‘산 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산과 사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맘껏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요즘 MZ 세대가 선호하는 덕업일치(德業一致)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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