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5월의 아버지

2025-05-07

어머니는 아버지가 들어오시기 전에 저녁을 차리지 않으셨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늦게 들오시는 날은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 밥을 굶은 적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에게‘왜 깨우지 않았느냐?’고 항의라도 하면‘아버지가 오시기도 전에 자는 녀석은 밥 먹을 자격이 없다!’라고 한마디로 내 입을 봉했다. 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강하게 부각 시키는 어머니의 힘이었다. 맛있는 반찬이나, 이웃이 준 귀한 음식은 항상 아버지 앞에 차려져 있었다. 아버지께서 수저를 드시기 전에 밥에 손이 가면 혼을 내시기도 했다.

나도 어른이 되면‘저런 대접을 받겠구나!’생각했다. 결혼을 해서 막상 아버지가 되었는데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아이들 밥을 먹이고 공부를 시켰다. 아버지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는 어쩌면 돈키호테인지도 모른다. 나름의 정의감을 가지고 저돌적으로 행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아침이 되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비루먹은 로시난테(Rosinante)를 타고 삶의 전쟁터로 나간다. 가족을 위해서 벌렁거리는 심장을 달래고 겁먹은 표정을 감춘 채 의기양양하기 출근을 한다. 저녁때가 되어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풀죽은 옷처럼 맥을 못 추었다. 리모컨을 잡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자식들은 저희들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아버지들은 언제나 나이 많은 소년이었다. 어렸을 때는 장난감 자동차를 탐내고, 어른이 되어서는 자동차를 장난감처럼 다룬다. 삶에 깨지고 부대끼며 세상에게 길들여지는 늙은 소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의 주름과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처졌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세 개의 짐이 있다. 하나는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라는 짐이다. 또 하나는 출세와 성공의 짐이다. 나머지 하나는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짐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의 법칙을 따라야 하고 다윈의 진화법칙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들은 도덕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발생하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작아지는 슬픔을 경험한다.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아버지상을 잃어버림으로써 거대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버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방황하는 자식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존재감이 줄어들수록 자식들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버지들 역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상실한 채 가족의 품을 벗어나 거리를 방황하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한숨을 쉰다. 이는 결국 아버지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아버지들은 불량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과거처럼 저절로 권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사회적 관습이 아버지의 권위를 기본적으로 인정하여 주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는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다. 아버지들의 수난 시대이자 아버지 부재 시대이다.

아버지는 집과 같다. 집은 언제나 한 곳에 우뚝 서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아버지는 항상 사랑과 근심으로 자식들을 돌보고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한다. 아버지는 고독하다. 가족들 앞에서 태연하거나 자신만만한 척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존재이다.

5월의 하늘 아래서 힘들어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인 아버지! 아버지들이 쓸쓸한 등을 보이며 어버이날을 건너간다. 외로움은 아버지들의 운명인가 보다.

정성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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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5월 #가족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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