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심 씨는 가깝고도 먼 나라 낯선 이방인이다. 꽃다운 나이에 감당할 수 없던 슬픔으로 과거를 보냈다. 그는 희망을 찾으려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눈 감으면 혼자만의 괴로움이고 까만 밤으로 아침까지 길어진다.
밝은 표정으로 원래의 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나 가슴의 상처는 약으로도 못 고친다. 매일같이 꿈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배고프다며 성화다. 오싹한 기분과 함께 불쑥불쑥 나타나는 괴이한 얼굴들은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귀신. 어떡하냐는 주변의 걱정도 알고보면 손가락질하는 따돌림과 다를 바 없다.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익숙한 공간이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거기다 맨발에 잠옷차림이라 부끄러움 속 고개를 숙여야 하나 답답한 처지이고 누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막막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무당과 마주 앉으면 요란한 방울을 흔들고 매서운 질타와 함께 신을 모셔야 한다는 거짓 선전만 늘어놓는다. ‘불쌍하다’, ‘억울하다’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혔고, 안 하면 제 명에 살지 못한다는 협박도, 돈은 얼마나 준비할 수 있냐라는 장사꾼 흥정도 익숙하다.
운명이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문을 열고 가난하지만 빛나는 역할의 주인공이 돼 보자.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이라면 모범생이 될 수 있다.
준비는 간단하다. ‘나쁘다는 지옥에서 죽는다’와 ‘착하다는 하늘의 복을 쌓는다’이다. 일정한 위치에 오를 때까지 어설픈 간섭보다는 지켜보는 입장이어야 한다. 정확한 예측은 순간 박수를 받기도 하겠지만 시작은 화려하고 끝은 초라하다. 알아도 모르는 척 낮은 자세로 겸손해야 하고 초조하지 않는 집중력과 아니라는 강한 부정으로 달콤한 유혹과 선을 그어내자.
방해받지 않는 조용함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꺼내야 하고 남을 사랑하자는 책임 의식을 실천으로 옮겨가자. 높은 차원에서 오는 느낌이나 영감은 타협 대상이 아니라 원하던 질문의 최고의 성적표로 나무랄 때가 없다. 포기할까싶은 두려움에 백기 드는 항복은 쓰라린 실패자라 낙인찍혀야 한다. 후회는 늦고 위로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유를 갖고 양보하며 거친 황무지에 씨를 뿌려 보자. 풍년 농사를 짓는 탁월한 능력자가 된다면 미움이 이쁨을 받을 수 있다. 처음의 생각을 바꾼다거나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틀렸다.
거칠고 힘든 작업 대물림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