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4월 28일 5세대 걸그룹 ‘HITGS(힛지스)’가 정식 데뷔하며 그들의 롤모델이 ‘트와이스’라고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 그 이유로 다채로운 콘셉트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점을 꼽았다.
롤모델로 ‘블랙핑크’가 아닌 ‘트와이스’가 꼽힌 것은 이례적으로 생각될 수 있었다. 최근 K팝에서 개별 활동이 더 강해진 자율형 아티스트 그룹이 이상적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순차적 확장을 통해 ‘장수돌’ 면모를 보인 트와이스의 성공 모델이 여전히 한국형 아이돌 그룹에게는 유효할 수 있다. 트와이스 궤적을 정리해보는 것도 5세대 걸그룹에게 유의미할 것이다.

걸그룹 ‘트와이스’는 2023년 1월 ‘빌보드 위민 인 뮤직 어워즈’의 ‘브레이크스루 아티스트’ 부문에서 K팝 최초로 수상해 놀라게 했다. ‘빌보드 위민 인 뮤직 어워즈’가 빌보드가 한 해 동안 음악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최고의 여성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프로듀서 및 경영인 대상 대규모 시상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수상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2020년 ‘MORE & MORE’로 첫 빌보드 200 진입, 2021년 11월 12일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 아티스트 미국 차트 첫 진입 이후 올린 쾌거였다.
2015년 결성된 트와이스는 2016년 ‘CHEER UP’과 ‘TT’ 두 곡으로 3세대 걸그룹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한국 여가수 최초로 초동 10만 장을 넘겼다. 일본에서 제2차 한류 열풍을 일으킨 카라, 소녀시대 등에 이어 제3차 한류열풍을 주도한 걸그룹이 바로 트와이스다. 일본 데뷔 첫해인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오리콘 연간 총 판매량 K팝 걸그룹 부문에서 8년 연속 1위, 전체 총 매출액 순위도 1위를 기록했다. 연말 음악 프로그램인 NHK의 ‘홍백가합전’에 2017년, 2018년, 2019년 3년 연속, 2022년과 2024년까지 총 5회 나와 K팝 걸그룹 최다 출연 기록을 세웠다. K팝 걸그룹 사상 최초의 일본 돔 투어는 물론 해외 아티스트 가운데 데뷔 후 최단 기간 도쿄 돔 입성의 기록도 세웠다.
그런데 이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의 활약상이었다. 2020년 2월 트와이스가 미국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북미에 진출하려 할 때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미 데뷔한 지 6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더구나 블랙핑크는 서구, 트와이스는 아시아 원톱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곧 깨지기 시작했다. 2021년에 발매된 ‘Taste of Love’가 K팝 걸그룹 두 번째로 빌보드 200에 톱10에 진입했고, 이어진 앨범 ‘Formula of Love: O+T=<3’이 모두 빌보드 200 톱10에 차트인 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이로써 K팝 걸그룹 최초로 한 해에 두 개의 앨범을 톱10에 진입시켰다. 트와이스의 영어 곡 ‘더 필즈(The Feels)’, ‘문라이트 선라이즈(MOONLIGHT SUNRISE)’는 핫100 상위권에 올랐다. 2023년에 발매한 ‘READY TO BE’는 K팝 걸그룹 최다 판매량으로 빌보드 200 2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13집 미니앨범 ‘With YOU-th’가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뉴진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스트레이키즈, 슈퍼엠, 에이티즈 등에 이어 여덟 번째 K팝 그룹 1위였지만, 10년 차 걸그룹이 세운 최초의 기록이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과거 JYP의 원더걸스가 이루지 못한 꿈을 트와이스가 실현한 셈이었다.

요컨대 트와이스는 기존 K팝 사례와 다른 성공 모델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에서 최고 인기를 얻은 뒤 서구까지 아우르는 최초의 걸그룹이 된 셈이다. 보통 걸그룹은 데뷔 2~3년 차에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진출한다. 오늘날 5세대 아이돌은 바로 글로벌 무대로 직행한다. 특정 활동 기간이 지나면 인기가 시들하기 때문에 북미 진출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특히 7년 차 징크스를 앞둔 6년 차 걸그룹이 북미 진출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실제로 트와이스는 북미 진출 뒤 바로 악재에 부딪혔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닥친 것. 대면 접촉이 어려운 전염병 환란 속에서 트와이스의 활동은 원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호재가 되었다. 반강제 격리된 사람들이 비대면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트와이스의 지난 음반과 뮤직비디오, 공연 활동 등 그동안 쌓인 콘텐츠를 전 세계 팬들이 즐겼다. 새로운 걸그룹보다 콘텐츠가 매우 풍부했기 때문이다. 디깅 컬처의 전형이었다. 특히 어렵지 않은 킬링 포인트 안무로 입덕하기 쉬웠고, 숏츠에 맞는 틱톡 댄스 챌린지에 최적화된 춤과 노래가 많았다. 이는 참여감을 중시하는 Z세대에게 어필했다.
여기에 중독성 강한 멜로디 중심의 곡들이 글로벌 팬덤을 새로 끌어들였다. 모바일 콘텐츠에 최적화된 그들의 가치는 어린 팬들에게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했다. 어떻게 보면 시대를 앞서간 행보가 되었다.
대체적으로 한국의 걸그룹이 표준 계약 기간을 넘긴 후 분열하고 해체되거나 연기, 솔로 활동으로 흩어지는 것과 달리 트와이스는 완전체 활동을 계속 보여주는 점도 인기의 배경이다. 끈끈한 연대와 우정, 결속력 덕에 완성도 있는 무대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트와이스는 걸그룹이 단지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끝까지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각인시켜왔다. 장수돌 걸그룹으로 팬들에게 끝까지 책임과 소명을 다하는 태도는 팬덤을 다시금 강화했다. 그 이름 그대로 눈으로 귀로 팬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고 최선을 다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팬 중심의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이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팬들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K팝의 정체성은 5세대로 진화한 아티스트와 아이돌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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