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교육청 등 수도권 지역 교육감들은 지난달 29일 간담회를 열고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추가 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부터 초중고에 도입된 AI 교과서가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고, 교육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I 교과서는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역점 사업으로 강조해 온 만큼 교육감들이 공개적으로 속도 조절론을 주장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에듀테크 업체를 운영하는 이들 중에도 현 상태의 AI 디지털교과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있다. 김성윤 아이포트폴리오 대표는 영어책을 기반으로 아이들의 AI 맞춤형 영어 학습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리딩앤’을 운영하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와 사뭇 비슷해 보이지만 김 대표는 적어도 영어 과목에 있어서는 교육부 주도의 일률적인 AI 교과서 도입이 아이들의 언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와 지난 3월28일과 지난 1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부 교육감들이 이례적으로 AI 교과서 추가 개발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봤나?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영어 과목의 AI 교과서 개발은 신중해야 한다. AI 교과서가 자칫하면 한국의 교육을 10년은 후퇴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
-왜 그런가?
“지금의 AI 교과서는 단지 평가를 좀 더 자동으로 해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웠을 때 어디에 위치하는지 보여줄 뿐이다. 기존 영어 교과서를 해체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영어를 언어로 다루지 않는 문제점을 그대로 가져간다. 잘못된 바탕에 AI 기술을 넣은 것인데, AI 기술마저 최신의 기술이 아니다.”
-영어 공부에 교과서가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건지?
“영어는 소통 도구다. 반면 교과서는 ‘How are you’ ‘Thank you, and you?’ 같은 식으로 대화를 외워서 기억하도록 한다. 원어민 중 실생활에서 정해진 대화처럼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언어는 외워서 기억해내는 방식으로 익히는 것도 아니다. 언어를 배우는 방법을 왜 꼭 교과서라는 방법으로 나라가 규율해야 하나.”
-AI 교과서의 기술적 문제는 무엇인가?
“AI 교과서에 도입된 AI는 최신 업데이트된 기술이 아니다. AI 교과서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기반의 AI가 개발되기 전부터 기획되기 시작했다. 데이터 보안 등의 이유로 외부 LLM을 쓰기도 어렵다. 네이버 클로바나 오픈AI의 챗GPT를 사용할 수 없다. 현재 사회에 나온 AI가 4세대 정도라고 하면, AI 교과서는 2세대 AI를 도입한 수준이다. 과거에 쓰던 규칙 기반 시스템이기 때문에 학생이 문제를 맞췄는지 틀렸는지에 결과에 따라 맞춤형 문제를 줄 뿐이다. 미래지향적 AI가 아니라 과거에 매몰된 AI 기술인 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업데이트를 하면 되지 않을까?
“학생들마다 개인 지도교사를 붙여주듯 진화해야 할 텐데 쉽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AI 기술이 나와 있고 추론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우리 같은 민간 기업은 신기술이 나오면 2~3주 안에 테스트하고 파일럿 모델을 뽑아낼 수 있지만 국가 주도 프로젝트는 그렇게 빠르게 대응할 수 없다. 신기술에 대응하는 AI 교육 생태계 자체를 조성하지 않으면 지금의 AI 교과서를 쓰는 학생들은 가장 느리게 발전하는 AI 교과서를 쓰게 될 것이다.”
-AI를 활용하는 교육 생태계는 어떻게 조성될 수 있을까?
“교육부가 ‘탑다운’ 식으로 하면 안 된다. AI 교과서를 쓸지 말지도 교육청과 학교 자율로 맡기고 기술 개발도 교육부가 앞장서지 않으면 된다. 교육부는 각 교육청과 학교가 AI 소프트웨어를 자율적으로 활용하려고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정도를 만들어 주면 된다고 본다. 민간에서 개발한 AI 콘텐츠가 모두 좋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엄격한 품질 심사도 필요하다.”
-AI 교과서 선택은 자율로 맡기고 교육 예산으로 교원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도 했다.
“교육부가 이번에 AI 교과서를 도입한 방식을 보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서가 잘못됐다. 전면 도입하기 전에 우선 교사들이 AI를 활용하도록 하는 사고 전환이 먼저 일어나야 했다. 디지털 교과서라는 도구를 도입하기 이전에 교육에 AI 활용에 대한 필요를 느끼도록 하는 교원 교육이 선행됐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선생님들이 써보지도 않은 AI 교과서를 학생들 대상으로 수업하도록 한 것이다. 선생님들 입장에선 AI 활용에 대해 지엽적인 마음이 될 수밖에 없도록 교육부가 교사들을 몰아세운 셈이다. AI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과 토론이 필요했다.”
-AI 교과서 전면 도입 전부터 리딩앤 같은 에듀테크를 잘 활용하던 교사들도 있었다.
“그렇다. AI를 활용한 교육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AI 교과서에 교과서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한국의 영어 교육은 AI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영어 습득 원리에 맞지 않는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한국의 영어 교육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점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너무 조기에 교육한다. 교육에는 적기가 있다. 뇌에는 발달단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조기에 교육한다고 해서 사춘기가 지나야 발달하는 부분이 갑자기 발달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영유아 때부터 교육하는 문제다. 두 번째는 평가에 집착한다. 평가하지 않으면 교육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걸 ‘가르쳐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생각을 하고,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이 생겨야만 영어라는 언어 실력이 늘 수 있다.”
-언어 공부는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나?
“자기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이 축적돼야만 한다.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 뇌가 작동하고 그때 비로소 언어가 습득된다. 그래서 독서가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방법이다. 해리포터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 <해리포터>는 보는 사람 스스로 상상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이미지를 떠먹여 줄 뿐이다. 반면 소설 ‘해리포터’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음 내용을 추론할 수 있고, 읽는 내용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면서 사고를 유발한다. 교과서는 이런 식으로 학생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책 속 대화를 외우고, 반복 훈련 시키고, 그 다음에는 맞는지 틀렸는지 평가를 한다. 세 가지 문제를 다 갖고 있다.
-영유아 영어학원을 비롯한 영어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AI 교과서를 사용하면 사교육이 줄어들까?
“사교육은 1%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 본다. 한국 사회가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니라 경쟁률이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서열화된 학벌 자체가 권력이 됐기 때문에 무조건 남보다 앞서는 교육을 시키려고 한다. AI 교과서가 그 구조를 해결해주진 않을 것이다. 지금 이뤄지는 영어 사교육의 70~80%는 시간·돈 낭비들이라고 생각한다. 영어 사교육이 아예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어로 깊이 있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거나, 미국 대학생들이 토론하는 수준까지 영어를 하고 싶다면 사교육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지금은 단순히 영어 실력을 한 줄로 세워 누가 더 앞에 있는지 가르는 목적으로 사교육을 이용한다.”
-이상적인 영어 교육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어는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은 것이 돼야 한다. 가르쳐서 되는 것도 아니고, 평가해서 옆 사람과 비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 실력을 늘리고 싶어서 스스로 계속하는 것처럼 영어도 재밌는 것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