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장 임명 발표가 나고 (소설가) 황석영 선배가 카카오톡 축하 인사를 보냈더라고요. 단 한 문장으로 ‘일이 맞춤하고 격이 맞다고 생각함’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박물관 일이 저에게 ‘맞춤’이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보다 차관이 맞다는 거겠죠. (웃음) 저도 ‘형님 잘할게요’라고 적어 보냈어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취임 사흘만인 24일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논란이 된 국립중앙박물관장 임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글로 독자를 만났는데 이제는 유물로 이야기하며 국민을 만나겠다. 67학번 마지막 일로 여기에 쏟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가장 유력한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평가됐는데 스스로 거절했다거나 문제가 있다는 등 여러가지 말들이 나왔었다. 그는 이날 사전에 보도자료로 공개한 ‘소회’를 통해 “그동안 평생 연구한 한국미술사를 바탕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과 요구에 답하기 위해 관장직을 수락했다. 나로서는 문체부 장관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더 중요하고 내 능력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역사·문화의 심장”이라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여전히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진영 문화계에서는 문화예술 자체의 육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유 관장도 5월 제21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직속기구인 ‘K문화강국위원회’의 위원장 자격으로 “문화산업이 위주가 되더라도 문화예술이 약화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이날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최휘영 전 놀유니버스 대표에 대한 평가로 “직속상관(문체부 장관)이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겠나”면서도 “물론 문화산업이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화예술 자체의 육성 인프라도 중요하다. 인프라를 등한시하면 ‘그러면 안된다’고 조언할 수 있지는 않겠나”고 강조했다. 이어 “저는 (장관) 적임자가 아니다. 돈 쓰는 것은 잘하는데 돈 버는 것은 잘 못한다. 새로운 문체부 장관이 문화산업을 키울 것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생각 못하는 것을 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유 관장은 향후 중점을 둔 사업 방향에 대해 “K컬처의 뿌리인 한국 미술을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소개하는 ‘한국미술 5000년’ 전시를 다시 세계에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전시가 “블록버스터급이 될 것”이라면서 “다만 해외 상대 박물관과 스케줄을 협의하려면 2~3년 후에 열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미술 5000년’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징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다. 박물관은 1979년 5월부터 1981년 10월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턴, 뉴욕, 워싱턴 등에서 전시를 선보였고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소개했다. 이 전시는 “한국 미술이 서구권에서 인정받게 된 큰 계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 관장은 “이 전시만 제대로 하면 관장으로서, 박물관으로서도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날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손기정 선수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조망한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개막식을 가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베를린 올림픽 당시 특별 부상이었던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보물)’와 금메달, 월계관, 우승 상장, 신문 기사 등 총 18건을 모았다.
특히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직후인 1936년 8월 15일 직접 서명한 엽서 실물이 처음으로 공개돼 관심을 모은다. 엽서에는 ‘Korean(코리안) 손긔정’이라는 서명이 담겼다. 박물관 측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