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만큼 배꼽도 크다. 4배가 넘는 시세 차익. 이 정도면 갑질 중의 갑질이다.
최근 한 골프 커뮤니티에는 ‘그늘집 횡포’라는 글이 올라왔다. ‘수박 스테이크’라는 메뉴로 수박 5∼6조각과 함께 나이프와 포크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이 메뉴의 가격은 3만5000원이었다. 글 작성자는 “음식도 너무 비싼데, 캐디들은 빨리 나오라고 아우성”이라며 “소비자를 호구로 보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골퍼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곳, 바로 그늘집이다. 전반 9홀을 마치고 후반 9홀로 넘어가기 전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무더위 혹은 한파에 지친 골퍼들에겐 달콤한 오아시스와도 같다. 다만, 잠깐의 휴식이라고 하기엔 마음을 꽤 단단히 먹어야 한다. 시중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수박 1통에 2만3763원이다. 도매에서 소매로 넘어오는 과정, 운송비, 인건비를 다 더해도 3만원이면 구매할 수 있다. 그늘집에서는 이 수박 1통을 4분의 1로 나눈 뒤 5∼6조각 정도로 나눠 3만5000원에 판매한다. 수도권 A 골프장의 경우 5만원을 받기도 한다. 수박 1통으로 4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내는 셈이다.
이 같은 골프장의 폭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벌써 몇 년째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이제는 골프장 안에서 무엇을 사먹는 것 자체가 ‘바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용객이 봉이다. 웬만한 호텔 음식 값 뺨친다. 보통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면 1인당 보통 2만5000원 이상이다. 커피 한 잔 값도 1만원∼1만5000원에 이른다. 실제로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확인한 결과 수도권 B골프장 중식의 경우 애호박찌개 1인분에 2만7000원, 냉우동과 치킨난반 세트 3만원, 바게트 샌드위치 2만8000원 등이었다. 삼계탕의 경우 4인 기준 20만원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비싼 가격에 판매하면서도 재료의 퀄리티가 최상인 것도 아니다. 떡볶이, 편육, 족발 등은 시중에 판매되는 밀키트를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산지의 경우 국산 또는 국내산보다는 수입산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수도권 B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의 경우 가격이 급등한 고춧가루는 중국산을 쓰고 있으며, 소고기 역시 국내산과 미국산을 메뉴에 따라 섞어쓰고 있다. 최근 수도권의 한 대중골프장을 찾은 박모 씨는 “티오프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골프장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먹을 때마다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미 도마 위에 오른 지 오래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실은 지난 3월 ‘골프장 갑질근절 토론회’를 열어 해당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당시 박 의원은 “탕수육 한 접시 가격이 14만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면서 “이는 신라호텔 탕수육(9만원)보다도 비싼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국내 골프장 그린피가 수직상승한 가운데 부대시설 가격까지 폭등하면서 일각에선 해외 원정을 가는 것이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질적으로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맛은 둘째 치고, 기본적인 위생 상태에서도 불합격을 받은 곳도 꽤 있었다. 2023년 식약처가 취합한 바에 따르면 당시 상반기에만 전국 골프장 내 음식점 20곳이 적발됐다. 지방 C골프장의 경우 기름때가 가득한 조리 기구를 이용하거나 원산지를 제대로 표기 안해 적발됐다. D골프장에서는 음식물에서 이물질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상 독과점 시스템인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식사를 했던 이용객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콧대 높은 그린피 가격,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높은 위탁운영 수수료를 지적한다. 과거 골프장 식당 운영권은 중소업체 위주였으나 코로나19 이후 대기업들이 대거 시장을 잠식했다. 하나둘 수수료를 높이면서 이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이용객들에게 향하고 있다. 대기업이 아웃소싱으로 운영하는 골프장에 가면 직영으로 하는 골프장보다 훨씬 비싼 이유다. 국내 골프 인원이 줄면서 내부적으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물론 반드시 골프장 안 부대시설을 이용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골프장 사업자는 이용객들에게 물품·음식물 등의 구매를 강제할 수 없다. 문제는 대다수의 골프장은 외부음식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골프는 체력적 소모가 꽤 큰 종목이다. 18홀 정도를 완주하기 위해선 4~5시간 걷는 게 보통이다. 골프장에선 음료 판매 수익으로만 직원 월급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이대로라면 ‘귀족 스포츠’라는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