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 대선 실시로 이재명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가운데 국정기획위원회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어제 “(정부 부처들의) 업무 보고 내용은 한마디로 매우 실망”이라며 “전 부처의 업무 보고를 다시 받는 수준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권 교체기에 으레 벌어지곤 하는 공직 사회 ‘군기 잡기’로 치부하기에는 도를 넘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국정 운영은 대통령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직자들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보다 겸손한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국정기획위는 그제 기획재정부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았다. 일부 위원이 기재부를 향해 “경제가 어려운데 기재부의 반성이 부족하다”, “이러니 기재부를 쪼개라는 얘기가 나온다” 등 험악한 말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새 정부 출범 이전 단계의 인수위라면 아직 국정 운영의 책임을 넘겨받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이 대통령 취임 후 벌써 보름 넘게 지났잖은가. 이재명정부가 이미 공식 출범한 상황에서 공직자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나 다름없다는 점을 국정기획위는 명심해야 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 기조로 ‘경제 성장’을 꼽았다. 미국이 고율의 관세 부과를 무기로 세계 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중국은 여러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하거나 바짝 추격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육성이 핵심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재계 총수들과의 회동에서 이 대통령이 기업과 정부가 ‘원팀’이 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비상시국에 국정기획위원들은 무슨 점령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윽박지르고 있으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지난 6·3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매우 급박하게 치러졌다. 자연히 여야 후보들이 내건 공약 중에는 충분한 검토 없이 임기응변으로 만들어진 정책도 많을 것이다. 국정기획위에 주어진 임무는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발표한 공약들 가운데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하는 과제와 그렇지 않은 것의 옥석 구분을 통해 새 정부 5년의 국정 로드맵을 만드는 일이다. 국정기획위원들은 쓸데없고 무의미한 힘자랑을 그만두고 철저하게 공약의 현실성 검증에만 매진하기 바란다. 그게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돕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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