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 시장 반등의 신호탄일까. 총 닷새 간의 여정을 끝내고 7일 서울 코엑스에서 폐막한 글로벌 아트페어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가 기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시장의 훈풍은 한국에 전시 공간을 둔 글로벌 갤러리와 국내 대형 갤러리로 쏠렸다 이들은 서울의 풍부한 미술 인프라를 활용해 소속 스타 작가들의 최고 수준의 전시를 개최해 작가의 이름을 알린 후 페어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썼고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7일 프리즈와 키아프에 따르면 지난 3일부터 이날까지 개최된 두 페어는 지난해 ‘거래 절벽’과는 사뭇 다른 활발한 미술품 거래를 성사시키며 미술시장 반등을 관측하게 했다. 국내외 갤러리 대부분은 “기대 이상”이라는 말로 이번 페어의 성과를 요약했다. 해외 갤러리 관계자 상당 수는 “진지한 컬렉터가 많아졌고 에너지가 좋아졌다”며 키아프리즈에 대한 만족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서울에 전시 공간을 여는 등 한국 컬렉터들과 장기간 교류해온 글로벌 주요 갤러리들이 이번 페어의 승자로 등극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한국 컬렉터들이 확고한 명성을 가진 ‘블루칩’ 작가를 선호한다는 판단에 따라 소속 스타 작가들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하는 전략을 써왔다. 올해 4회차를 맞는 키아프리즈에서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실제 3점 연작이 450만 달러(약 63억 원)에 팔리며 프리즈 서울의 공식 최고가 판매 기록을 새로 쓴 하우저앤워스 소속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의 경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을 진행 중이다.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이불,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창열, 호암미술관과 국제갤러리가 동시에 선보인 루이즈 부르주아 등도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 인파를 모은 후 이번 페어에서 순조롭게 작품을 팔아 주목받은 작가군이다. 화이트큐브도 타데우스 로팍과 영국 출신의 조각가 안토리 곰리의 신작 개인전을 진행 중인 가운데 각각 45만 파운드(약 8억 5000만 원), 25만 파운드(약 4억 7000만 원)에 해당하는 작가의 조각 두 점을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웬디 쉬 화이트큐브 디렉터는 “올해 한국 컬렉터들과의 교류가 뚜렷하게 증가했고, 특히 서울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미노루 노마타, 모나 하툼 등을 위주로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즈워너의 파트너 그렉 루레이 역시 “서울 한가람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는 캐서린 번하트의 신작 회화가 판매됐고 루카스 아루다의 회화도 서울 주요 미술관에 소장됐다”고 했다.


국내 대형 갤러리들도 프리즈와 키아프를 다르게 접근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고무적인 성과를 올렸다. 프리즈를 통해 한국 거장을 소개하고 키아프에는 중견급 작가를 소개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학고재는 프리즈 개막 첫날 김환기의 ‘구름과 달’을 20억 원에 판매하며 주목받았고 국제갤러리는 단색화 거장 박서보와 하종현의 수억 원 상당의 작품을 다수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또 프리즈에서 정상화의 작품을 60만 달러(약 8억 3000만 원)에 거래했던 갤러리현대의 경우 키아프에서는 김보희의 작품을 각 1억 4000만 원대로 모두 판매하고 김성윤의 작품을 완판하는 등 실적을 냈다. 국제갤러리도 우고 론디노네의 돌 설치작 시리즈를 전량 판매해 프리즈와 합쳐 40건 가까운 판매 기록을 세웠고 학고재는 김재용의 ‘도넛’ 조각을 사실상 완판했다.
두 아트페어가 열리는 ‘9월의 서울’이 글로벌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무대로 작용하며 한국 작가들의 위상과 시장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것은 가장 의미 있는 성과다. 일례로 뉴욕 기반의 갤러리인 티나킴은 김창열의 첫 번째 물방울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보드 멤버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아프가 조명한 신진 작가의 약진도 주목된다. 올해 키아프 하이라이트로 선정된 박그림 작가와 박노완 작가의 경우 이번 페어에서만 7점, 10점씩 작품을 판매하며 눈길을 끌었다. 국내 한 갤러리 관계자는 “프리즈 서울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컬렉터들이 키아프도 방문하면서 국내 신진 작가에도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프리즈와 키아프의 지난 4년의 동행이 마침내 빛을 보는 것 같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