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다. 6·3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선거란 본래 ‘네편 내편’ 편가르기 싸움이지만 이번처럼 명확하게 이분법이 지배하는 선거도 없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 ‘계엄 찬성 대 계엄 반대’ 등이 그것이다. 이는 21대 대선의 의의이자 한계다. ‘안티테제’가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후보 경선은 그 ‘예고편’을 보여줬다.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전에 이 싸움판의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 어렵더라도 미래를 고민하고 질문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최근 한국은행은 1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이 -0.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갈수록 내리막길이다. 이달 말 발표되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0%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해외 주요 투자은행들을 비롯해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0.7%까지 낮췄다. 사실상 성장이 멈췄다고 봐야 한다. 경기 위기가 닥치면 보통 정부 재정을 쓰고 금리를 낮춘다. 수출로 내수의 부진을 덮어왔다.
지금은 이 모든 수단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당장 수출 버팀목이 위태롭다. 올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보다 대폭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이 통과됐지만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0.1%포인트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0조원 가까운 세수 펑크가 발생했다. 정부 재정을 마냥 쓰기도 쉽지 않다. 금리 인하 기조에 들어섰지만 미국이 금리를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빠르게 인하하기도 부담스럽다. 금리 인하는 부동산 거품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둘 다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성장 동력이 단박에 찾아질 리도 없다. 얼마 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제로금리’ ‘양적완화’를 언급한 배경도 한국이 그만큼 경기 대응 수단이 없을뿐더러 저성장의 길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성장을 극복할 논의도 부족하지만 ‘어떤 성장이냐’라는 논의가 전무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의 길목에서 ‘경제 성장’을 강조할수록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더 작아진다. 성장의 논리 앞에 노동자의 권리가 뒤로 밀리고,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개발도 멀어진다. 강남 3구의 집값 고공행진 소식에 서울에서 방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목소리가 뒤덮인다. 중소기업 가업상속세 면제, 법인세 면제 등은 결국 세금을 덜 걷는 정책이다.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이 줄어들면 더 적게 버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복지는 늘어나기 어렵다.
이 모든 논의가 분출되어야 하는 장이 바로 대통령 선거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성장 동력을 어디서 찾고, 부의 재분배를 도모하도록 세금을 어떻게 걷을지, 강남 3구 집값이 아니라 주거안정을 높일 부동산 정책은 무엇인지 따져야 할 시점이다. 찬반이 부딪치고 조율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를 ‘이재명 대 반이재명’으로 흐르게 둬서는 안 된다.
세종시 호수공원 ‘바람의 언덕’에 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언이 쓰인 대리석 의자가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지연되던 지난 3월 의자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역사는 진보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 노 전 대통령이 독일의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출판부가 펴낸 책 <권력자의 말>의 기고문에 쓴 내용이었다.
“반복하는 역사가 있고 진보하는 역사가 있다. 대립과 갈등, 패권의 추구, 지배와 저항, 이런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되돌아가지 않는 역사가 있다. 왕과 귀족들이 누리던 권력과 풍요와 여유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어 왔다.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 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꾸준히 확산되어 왔다. 나는 이것을 역사의 진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진보는 계속될 것이다.”
12·3 불법계엄과 윤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과 대선으로 이어진 2025년 5월, 역사가 진보하는지 확신은 없다. 하나는 알겠다.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한다.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기점에 미래세대를 생각하고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우리는 묻고 따져야 한다. 정치의 계절이 권력투쟁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진정한 ‘정치’와 ‘정책’의 계절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진보를 만드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