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대법원이 연방 교육부 직원을 절반 가까이 해고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손을 들어줬다. 사실상 교육부 해체 길을 열어준 것과 다름없다. 미국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부 기능이 와해되면 저소득층·농촌지역·장애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14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연방법원이 내린 명령을 뒤집고 이같이 결정했다. 앞서 연방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서명한 교육부 폐지 행정명령 실행을 금지하고, 교육부 직원 대량 해고를 중단하라는 ‘예비적 효력정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의 이날 결정은 효력정지 명령에 불복한 트럼프 행정부의 긴급 상고에 대해 판단한 것인 만큼 최종 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동의 없이 정부 부처를 해체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린다 맥마흔 교육부 장관은 곧 대량 해고 절차를 밟은 후 해당 부처의 주요 기능을 다른 기관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고 통보한 1300명에 더해 수습 직원과 사직 권고 대상까지 더하면 전체 교육부 직원의 절반가량이 일거에 해고될 예정이다.
또한 학자금 대출 업무는 재무부, 인력 교육은 노동부, 저소득층·농촌 지역 아동 지원은 보건복지부와 주 정부, 차별 금지 관련 민권 업무는 법무부 등으로 이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교육부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된다. 이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와해시킨 것과 같은 수순이다.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설립된 교육부는 저소득층·농촌·특수학교 학생 지원, 대학 학자금 대출 관리, 학생들을 인종 및 성차별로부터 보호하는 역할 등을 담당해 왔다. 교육과정이나 내용에 개입하진 않는다.
하지만 공화당을 비롯한 교육부 폐지론자들은 교육 규제 권한이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에 속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교육부 해체를 주장해 왔다. 특히 최근 들어 성적지향 등의 차이를 인정하는 다양성(DEI) 교육과 미국 사회의 구조적 인종차별 문제를 가르치는 비판적 인종이론 등을 둘러싸고 교육 현장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이같은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학교가 좌파들의 세뇌교육 온상이 됐다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당장 교육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교육부 기능이 와해될 경우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다. 가장 큰 피해자는 빈곤층·장애 학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성향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는 트럼프 집권 2기의 청사진을 그린 ‘프로젝트2025’가 제안한 것처럼 교육부 기능을 해체한 후 빈곤지역 공립학교에 대한 연방 지원 기금을 보조금으로 일괄 전환해 각 주 정부에 지급할 경우 18만개의 공립학교 교사 일자리가 사라지고, 저소득층 학생 280만명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이 단체는 “트럼프 행정부는 사립학교 바우처 지원을 확대하는 대신 농촌·빈곤 지역 학교, 장애학생 특수교육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을 삭감하려 하고 있다”면서 “(교육부 무력화는) 감독 책임, 교육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전문성 손실 등을 초래해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피부색·성별·장애에 따른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교육부 산하 민권국 업무가 법무부로 이전될 경우, 연방 교육당국의 감독 부재로 인해 차별에 취약해진 학생들의 학습동기가 저하돼 중퇴율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전미교육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직업기술 교육 프로그램과 장애 학생 특수교육을 축소시키고, 학생의 시민권을 훼손시킬 대법원 결정에 경악한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전역의 저소득층 학생 5000만명의 미래와 공립학교를 파괴하려는 상황에서 교육자들은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해체 시도는 미국 사회 내에서도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여론조사기관인 모닝컨설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49%는 ‘교육부 해체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6%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