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신앙의 꽃…황보윤 장편소설 ‘신유년에 핀 꽃’

2025-08-27

 1791년 신해박해에서 1801년 신유박해까지, 불과 10년은 조선 천주교사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치열했던 시간이었다.

황보윤 작가의 신작 ‘신유년에 핀 꽃(바오로딸·1만5,000원)’은 이 격동의 시대를 무대로, 신앙을 지키려 한 사람들의 흔들림과 결단을 밀도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밀사 윤유일이 북경에서 조상 제사가 우상숭배라는 주교의 밀지를 가져오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로부터 1년 뒤 진산의 양반 윤지충이 모친의 상례를 유교식 제사가 아닌 천주교식으로 치른 일로 그의 사촌 권상연과 함께 참수되고 한양과 양근, 내포와 전주 등지의 교우들이 검거된다. 이때 배교하고 풀려난 교우들은 비밀리에 신앙을 이어간다.

 작품의 중심에는 세 번이나 배교를 했던 평신도 지도자 이존창과 조선에 잠입해 신앙 공동체를 이끈 주문모 신부가 있다. 이존창의 고뇌와 회심, 그리고 주문모 신부의 편지는 당시의 박해를 생생히 전하며, 독자로 하여금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서게 한다. 그렇게 조선 천주교의 역사는 짧은 봄날처럼 화려했으나 곧 피비린내 나는 박해의 겨울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소설이 오늘날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황 작가는 흔들리고 갈등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신앙은 완전무결한 답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소설 속 인물들의 번민은 곧 우리의 번민이고, 그들의 회심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희망이다.

 황 작가는 “소설을 쓰는 과정이 곧 나의 신앙 고백이었다”고 밝힌다. 실제로 그는 신유박해의 기록을 따라가며, 인간적 나약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보여주려 했다.

 김연수 소설가는 추천사에서 “흔들린다는 건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는 신앙뿐 아니라 삶 전체에 해당하는 메시지다.

 ‘신유년에 핀 꽃’은 200여 년 전 신앙인들의 투쟁을 통해 지금의 독자에게도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뿌리를 내리고 어떤 꽃을 피워낼 것인가. 거센 풍파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소설은 흔들림조차 길 위의 여정임을 일깨우며 다시 한 번 희망의 새벽을 약속한다.

 황 작가는 전북일보와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소설집 ‘로키의 거짓말’, ‘모니카, 모니카’, 장편소설 ‘광암 이벽’이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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