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정부가 대통령 행정명령을 앞세우며 하버드대와 충돌하고 있다.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하버드대는 1776년 미합중국의 건국보다 140년이나 앞선 1636년에 설립됐다. 그토록 역사가 깊은 하버드가 연방정부가 요구하는 다양성 프로그램 축소와 외국 학생 등록 제한과 같은 행정명령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올해 초부터 연방정부는 지침을 따르지 않는 대학들의 연구개발(R&D) 및 과학연구 기금 지급을 중단했다. 그 여파로 하버드·컬럼비아·MIT·코넬 등에서는 교수임용이 동결되고 연구실들은 연구비가 바닥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과학기술 연구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던 연방정부와 대학 간의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이 위기에 봉착했다.

연구실의 운영 중단을 막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으로, 유수의 미국 대학들과 교수들이 특허기술 소유권을 매각하여 최소한의 연구라도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지금 미국 법률시장은 특허기술 이전과 특허권 매입으로 활황을 맞았다.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라고도 불리는 비제조 특허전문회사(non-practicing entity, NPE)들이 입도선매 방식으로 대학의 특허기술 소유권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이들은 특허를 매입한 후 그 기술로 상업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당 특허기술 독점을 통한 라이선스 수익 또는 특허침해 기획소송을 제기하여 소송수익을 극대화하는 사업 모델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이전 촉진이라는 순기능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미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대폭적인 R&D 예산 삭감도 포함된다. 최근 캘리포니아·텍사스·델라웨어 주의 변호사들이 우리나라 연구 중심 대학들의 특허기술 소유권을 매입하러 서울과 대전, 그리고 포항으로 모여들고 있다.
정부의 R&D 예산 대폭 삭감으로 인해 과학기술강국을 목표로 우리 대학들이 개발해서 보유하고 있는 특허기술들이 미국에 팔려 나가는 것은 안타까운 국부유출이다. 게다가 도매금으로 팔려나간 특허들은 미래에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특허침해 기획 소송의 무기가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올 우려가 크다.
대학에서 악전고투의 연구개발 과정을 통해 만들어내는 특허 기술은 과학기술강국 대한민국의 근간이다. ‘굶주린 농부도 씨앗만은 남긴다’는 고사처럼, 급하다고 미래의 씨앗을 해외에 매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욱더 다음 주에 출범할 새 정부의 R&D 예산 복원과 대폭 증대가 기대된다.
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