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홍석현 지음
중앙북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자전적 에세이집 『인생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을 펴냈다. 중앙일보ㆍJTBC 등 중앙미디어그룹을 이끌며 한국 언론ㆍ미디어 산업을 선도해온 저자가 지나온 삶을 돌아본 책이다. 거대 미디어 그룹 수장으로서의 경륜, 세계적 리더들과 교류하며 얻은 통찰에 자기 내면을 깊이 천착한 글들을 더했다.
우리 사회 리더로서 그간 여러 책을 냈지만 이처럼 개인적이고 내밀한 글은 처음이다. 언론인ㆍ기업가로서의 화려한 이력 뒤에 숨은 인간적인 고뇌와 종교적 깨달음까지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홍석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리더들의 통상적인 성공담이나 고담준론, 자기 미화와 거리를 둔 진솔하고 담백한 수상록이다.
예민한 성정의 어린 시절, 머리를 길게 기르고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사상에 자신을 노출했던 미국 유학 시절, 삼성에서 일하며 매형 이건희 회장에게 사업가의 DNA와 일류정신을 물려받던 시절, 중앙일보 대표가 돼 미디어의 혁신을 이끌던 시절, 그리고 현업에서 한걸음 물러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어른의 삶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1949년생인 저자는 해방된 나라에서 태어나 식민지 체험이 없고, 대한민국 국적으로 해외 유학길에 올라 ‘세계인 1세대’로 꼽힌다. 젊은 시절 12년의 해외생활 등은 그에게 ‘국제성’이라는 유전자를 깊이 각인시켰다. 1983년 귀국한 그는 정부와 삼성 등에서 일하다 1994년 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비평가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라.’ ‘뒤쫓지 말고 차선을 바꿔라.’ ‘마음과 습관을 바꿔야 운명이 바뀐다.’ ‘일 외에 몰입할 것을 만들라.’ 소제목 하나하나가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다. 여기에 세계 리더들과의 일화,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녹였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주룽지 중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캐서린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달라이 라마, 이건희 삼성 회장 등 등장인물부터가 화려하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같은 재미에, 워낙 거물들이라 사료적 가치도 있다.

특히 이건희 회장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가령 이회장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보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엔 영화광의 남다른 취미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자기 관점에 매몰되지 않는 입체적 사고훈련을 위해 같은 영화를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돌아가며 반복 관람한 것이다.
곱씹을 문장도 여럿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 관점은 있지만 고정된 답은 없는 사람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급변하는 현안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 여기 있다. 이미 정답을 갖고 있어서 상황이 달라졌는데 똑같은 답을 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맛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행복의 비밀을 찾으려는 자는 행복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이미 있으니,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주인으로 산다는 건 타인과 상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기적인 나를 버리고 거대한 이타성의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다. 나와 네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보수의 품격,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 엘리트ㆍ리더에게 필요한 공감 능력과 관용, 나눔과 베풂, 약자와의 공존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보수는 “전통을 존중하고, 언어와 생각에 품위가 있으며,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보수”다. 리버럴리즘이 만개한 1970년대 미국 유학 생활은 그에게 자유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줬다. 가질수록 염치를 알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신심 깊던 어머니의 유산이기도 하다. 지적인 다독가·교양인의 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저자는 독실한 원불교도로, 고등학생 때 불교학생단체 룸비니에 들어가면서 맺은 불교와의 인연이 삶의 고비고비를 거치며 더욱 깊어졌다. 불자로서의 정신성이 책의 곳곳에 짙게 묻어난다.
책은 ‘성장’ ‘품격’ ‘영성’ 세 장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인생 말년, 영성이야말로 내 삶의 큰 축”이라고 고백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표했다. “평생 책을 놓지 않은 아버지(유민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에게서는 호학(好學)을, 평생 기도하는 어머니에게는 적덕(積德)을, 아내와 처가에서는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아버지와 계급장 뗀 토론을 즐기는 조숙한 소년이던 그는 이제 손자와 계급장 뗀 토론을 즐기는 할아버지가 돼 이 책을 쓰고, 가족들에게 바쳤다. “만약 내게 진보냐 보수냐, 빨강이냐 파랑이냐 묻는다면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 빨강인지 파랑인지 확인부터 하는 사람이라고 답하겠다.” 이게 저자가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이겠다. 모처럼 젊은 독자들도 공감할 만한, 어른의 책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yang.sunghee@joongang.co.kr
이 기사는 구글 클라우드의 생성 AI를 기반으로 중앙일보가 만든 AI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