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선처럼 휘어진 선박 갑판 위, 방진복을 입은 검역관이 소맥 더미에 샘플봉을 찔러 넣는다. 갑판 아래 가득 실린 곡물은 20일 전 미국 워싱턴을 떠난 선박을 타고 이곳 인천항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던 비가 잠시 멈춘 틈에 가까스로 해치가 열리고 선상검역이 시작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지난 15일 인천항과 중부지역검역본부를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곡물, 채소, 화훼류가 국경을 넘어오기까지 어떤 검역 절차를 거치는지 직접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다. 인천항은 전국 곡물·사료류 선상검역의 21.6%를 담당하고 있다.
첫 일정으로 예정됐던 국제여객터미널 검역은 비로 인해 선박 입항이 지연되면서 실제 장면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한·중 여객노선에서는 대추, 참깨, 건고추 등 휴대품을 통한 농산물 반입이 자주 이뤄지며 검역관들은 수화물 X-ray와 개봉 검사로 병해충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날 핵심은 곡물 선상검역이었다. 검역은 선박이 완전히 정박하고 해치를 열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할 경우 검역은 연기된다. 이날도 오전까지 상황이 불확실했지만 오후 들어 날이 개면서 검역이 진행됐다. 검역관은 소맥과 대두박 등 사료용 곡물에 샘플 채취기를 삽입해 병해충 여부를 확인할 검체를 수거했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소독이나 폐기 처분이 내려진다. 중부지역본부는 작년 기준 전국 곡류 77%, 사료류 84%를 검역했다.
검역은 항만을 넘어 냉장 보세창고에서도 이어졌다. 인천시 중구에 위치한 창고에는 브로콜리, 국화, 마늘쫑, 우엉 등 신선 농산물이 진열돼 있었다. 검역관들은 이들 품목에서 표본을 추출해 병해충 유무를 정밀 검사한다. 중부지역본부는 전국 채소·화훼 수입의 약 50%를 담당하고 있으며, 병해충 유입 우려가 높은 중국·동남아 노선이 집중된 구간이다.
검역 대상은 곡물과 채소에 그치지 않는다. 종자, 묘목, 목재, 축산물까지 범위는 넓다. 최근 5년간 묘목류에선 바나나뿌리썩이선충, 종자류에선 감자걀쭉병이 반복 검출됐다. 검역본부는 2028년까지 국제 기준 정밀 실험실을 구축해 검사 역량을 높일 계획이다.
조규항 식물검역과장은 “소나무재선충은 목재 포장재만으로도 유입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를 막기 위해 세계 유일의 특별법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반입 차단을 위한 수사 기능도 강화되고 있다. 검역본부는 최근 불법 식물류와 금지 품목 밀반입에 대응하기 위해 '광역수사전담팀'을 신설했다. 현재는 본부 직할 소규모 조직이지만, 향후에는 관계부처와 협업해 단속 권한을 확장하는 체계적 대응도 추진 중이다.
김정희 본부장은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불법으로 반입하려는 사업자들이 실제 많이 적발되고 있다”며 “이들을 기획수사 방식으로 발본색원하고, 관세청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보다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본부장은 “여러 업무가 있지만 검역은 검역본부의 가장 기본이자 근본적인 소명”이라며 “외래 가축 질병과 병해충으로부터 국내 농업과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우리 조직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