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시] 한여름 내내 피는 열정, 배롱나무

2025-09-15

성삼문이 간파한 배롱나무 붉은꽃의 비밀

우리 모두 배롱나무에 피고 지는 한 송이 꽃

사육신으로 떠난 성삼문의 절명시 눈길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엊저녁 한 송이 떨어지면(昨夕一花衰)/ 오늘 아침 한 송이가 피어(今朝一花開)/ 서로 백일을 바라볼 수 있으니(相看一百日)/ 너와 마주하고 잔 기울이기 좋아라(對爾好銜杯)' - 성삼문(1418~1456), '백일홍(百日紅)'

배롱나무는 100일 동안 꽃을 피운 채 한여름을 난다. 땀 한 방울 흘리는 법 없이 고고하게 무더위를 버틴다. 그래서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른다. 성삼문은 배롱나무의 비밀을 알고 있다. 꽃 한 송이가 지고 나면 또 한 송이가 피어난다. 그 순환이 백일 동안 온통 붉은 꽃나무로 살 수 있게 한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고, 어른들은 늙어 노인이 된다. 시장 어귀에 좌판을 펼쳐놓고 호박이며 가지, 막 따 온 상추를 파는 할머니들도 청춘의 한때를 지나왔다. 그분들이 떠나고 나면 누군가가 또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배롱나무 한 그루가 지구라면 우리는 그 나무에 피고 지는 한 송이 꽃이다.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목숨 바쳐 신의를 지킨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고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처형장으로 가면서 지은 '절명시(絶命詩)'는 읽는 이의 가슴을 후벼판다. 백일홍, 배롱나무 꽃도 지고 있다.

'북소리 둥둥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네(擊鼓催人命)/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도 지려 하는구나(回頭日欲斜)/ 저승에는 주막 한 곳 없다 하니(黃泉無一店)/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어갈꼬(今夜宿誰家)'.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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