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얀마는 시간과 관련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미얀마는 불교 전통과 열대 기후의 영향으로 아침형 생활이 일상화되어 있다. 불교 스님들은 새벽 4시에 기상해 5시쯤 탁발을 다니고, 불자 주부들은 이른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한다. 소승불교 전통에 따라 스님들은 정오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점심은 스님들에게 하루의 마지막 식사이다. 이렇게 불교적 영향과 기후 조건이 맞물리며 미얀마의 생활 리듬은 자연스럽게 ‘아침형’으로 굳어졌다.
미얀마의 주요 생계 수단은 농사이며, 농부들은 해가 뜨기 전에 일을 시작하고, 45도까지 치솟는 여름철 오후에는 일을 중단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그늘 없는 곳에서의 농사나 노동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활 리듬은 미얀마 식문화에도 그래도 반영된다. 미얀마 전통 국수인 ‘모힝가’를 파는 식당이나 밀크티를 파는 찻집들은 출근길 직장인과 학생들로 늘 붐빈다. 하지만 8시가 지나면 대부분 음식이 떨어져 늦잠 잔 사람은 아침을 거르기 쉽다. 나 역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화여대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던 우즈베키스탄 친구와 아침 7시에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미얀마라면 아침 식당들이 붐빌 시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아침 식사 가게를 찾기 힘들어 결국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우즈베키스탄도 우리처럼 아침형 습관이라고 한다.

이처럼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밤은 오히려 단순하다. 회식이나 노래방 문화가 드물고, 대부분 일찍 귀가해 잠자리에 든다. 최근에는 군사 독재 체제로 인한 야간 통제와 잦은 정전 탓에 도시에서도 밤은 빨리 찾아온다. 미얀마에 비하면 한국은 상당히 야행성 사회이다. 늦은 퇴근 및 야근, 잦은 회식, 밤늦게 이어지는 학업과 여가 활동이 한국인의 일상이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 놀라운 속도의 배달 서비스, 다양한 가게들 덕분에 한국 도시의 밤은 낮처럼 활발하다. 나는 기숙사에서는 한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살며 시간 습관 차이를 더욱 실감했다. 그 친구는 술자리와 야간 활동으로 늦게 잠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했고, 나는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친구를 깨울까 늘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형광등 대신 작은 책상등을 켜고 나갈 준비를 하거나 아침 식사와 공부를 도서관에서 해결한 적이 많았다. 반대로 내가 일찍 자려 할 때 친구가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일을 해야 할 때는 서로 양보하며 맞춰야 했다.
그런데 나 역시 한국에서 6년째 살며 아르바이트와 대학원 공부로 밤을 새우면서 점점 아침형에서 야행성으로 변해가고 있다. 밤 1시나 2시가 되어야 잠들고, 오전 8시에 일어나면 ‘아,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라고 여길 정도다. 한국에 와 계신 어머니 역시 미얀마에서는 새벽 4~5시에 기상해 저녁 9시면 주무시던 분인데, 이제는 나를 기다리시거나 함께 늦게 주무시는 분으로 변해버렸다. 연세가 있으신 어머니에게는 일찍 주무시는 게 더 건강할 텐데, 그런 점에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두 나라의 시간 습관은 종교, 기후, 사회 구조라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형성되어 각자의 삶의 리듬과 가치관 속에 스며 있다. 어느 쪽이 옳고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른 리듬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먀닌이셰인(예진)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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