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해야 권력 잡는 현실, 비르투 없이 선하기만 하면 파멸

2025-05-02

[박상훈 ‘고전으로 읽는 민주주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론』은 “군주로부터 호의를 획득하려는 자는”으로 시작한다. 책을 헌정하는 마키아벨리 자신을 가리키는데, 호의를 ‘구하다’도, ‘얻으려 한다’도 아닌, ‘획득하려 한다’라고 표현했다. 본문에서 마키아벨리는 은혜·자비·사랑·은총·영광·명성·위대함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들 모두 구하고 얻을 일이 아니라 획득하고 장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적극적이지 않은 것, 상황에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것은 마키아벨리다운 일이 아닌데, 『군주론』 첫 문장부터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

군주는 분열된 국가 통합할 우두머리

이 책의 군주는 ‘왕’이 아니라 우두머리나 리더, 통치자나 지도자를 뜻하는 Principe다. 따라서 보편적 지도자론이나 권력론으로 읽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어떤 군주를 찾았을까? 본문 1장은 “사람들에게 명령할 권력”을 뜻하는 국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2장부터 세습이나 운으로 국가를 갖게 된 군주의 사례를 이야기하는데, 시큰둥하다. 그의 열정은 6장부터 시작되는 “자신의 힘, 자신의 비르투로” 국가를 획득한 군주를 향해 있다. 그런 군주를 7장에서는 “미래 권력”이라 불렀다. 마지막 26장은 더 분명하다. 그의 군주는 분열된 국가를 통합해 낼 “구원의 우두머리”다. 비르투를 가지고 미래 권력을 세울 사람,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비르투(Virtù)는 『군주론』의 중심 개념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단어를 ‘덕성’과 같은 도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의미를 추가했다. 없는 권력을 만들고, 있는 국가를 더 위대하게 만들 의지나 역량의 의미를 부각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정치 도덕론이 만들어졌다. 자신의 의지로 일을 하라. 그럴 역량을 키워라. 그게 정치적이고 또 도덕적이다.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손잡아 줄 것을 기대하고 넘어져서는 안 된다. ··· 이런 방어책은 당신 자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에 비겁하다. 바람직하고 확실하고 영구적일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비르투에 의존하는 것이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24장)

철학자 니체는 비르투를 ‘권력 의지’로 재정의했다. 권력 의지란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는 것, 즉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의 비르투”라고 말이다. 비르투를 가진 지도자를 가리켜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라 불렀다. 여기서 ‘무장’은 민중의 지지를 뜻한다. 지배하고 억압하려는 귀족 엘리트와 달리 민중은 “지배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고결한 존재다. 그들로부터 “명성을 획득하는 것”, 그것이 “안전한 방책”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민중 지도자다. 그는 “기회 말고는 다른 행운이 없었던 자”였으나 그 기회를 장악해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다. 마키아벨리에게 ‘기회’는 기다리는 게 아니다. 일부러 만든 인공물이다. 그래서 기회를 “계획된 역경”이라 표현했다. 역경을 딛고 자신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 ‘숨은 계획(hidden plan)’을 실현한 이가 군주다. 유약하고 무기력한 지도자, 비굴하게 잘 보이고 사랑받으려는 지도자는 쓸모없다. 그보다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 경외심을 가질 만한 존재로 만든 사람이 군주다. 17장의 표현처럼, “인간이란 두려움을 갖게 하는 사람보다 사랑받고자 하는 사람을 해치는 일에 덜 주저”한다. 그래서 이렇게 권고한다.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만, 군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군주의 뜻에 따른 것이기에, 현명한 군주라면 자신의 행동을 다른 사람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에 기초해 결정해야 한다.”(17장)

두려움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잔인함조차 선용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군주론』의 하이라이트다. 잔인한 조치는 일거에 행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킨다.” 반대로 호의는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오래 느낀다.” 마키아벨리는 단호한 조치를 제때 못하고 우왕좌왕하거나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결정을 바꿔 대는 변덕스러운 통치자를 경멸했다. 그런 군주라면 시혜를 베풀어도 “아무도 감사해 하지 않을 것”이다. 왜? “마치 마지못해 베푼 것처럼”, 다시 말해 상황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권고는 인간에 대해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지독히 현실주의적인 인식에서 발원한다. 그에게 인간이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유산을 뺏기는 일은 못 참는 존재”다. “감사할 줄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고, 위험은 감수하려 하지 않으면서 이익에는 밝다”라고도 표현한다. 정치는 그에 합당해야 한다. 비현실적 기대보다 “실효적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인간적인 방법 못지않게 “짐승의 방법”도 중시해야 한다. “함정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혼내 주기 위해서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

전후 독일 민주주의를 이끈 빌리 브란트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실천은 이상적으로” 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다운 일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갖게 된 결심을 실천하는 행동은 맹렬하게 해야 한다. 말만 이상적으로 하고 행동은 기회주의적인 것을 마키아벨리만큼 대놓고 비난한 사람은 없다. 의지를 세워라. 용기를 내라. 변화의 정치를 시도하라. 과감하게 해라. 그 길뿐이다.

혹자는 예수를 사례로 들어,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도 세상을 구했는데 왜 꼭 힘을 추구하고 때로 잔인해야 하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종교가 아니고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만인에게 구속력을 가진 ‘강제의 문제’를 다룬다. 적법한 정당성을 갖춰야 하지만, 본질은 지배-피지배의 문제다. 이런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신을 경배하고 착하고 선한 사람을 더 신뢰한다, 마키아벨리의 응수는 “경건한 잔인함”이다. 정치에는 단호한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이 있다. 그럴 때라면 잔인한 조치조차 경건한 목적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건 모순이고 이율배반 아닌가?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인간은 잘 믿는 존재다. 그렇기에 “속일 수 있는 사람을 항상 찾아(낼)” 수 있다. 당시 경건의 상징인 “교황들이 그렇게 일했다.”

인간은 착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기에 군주는 때로 “능숙한 기만자”여야 한다. 기만도 선용해야 하는 게 정치다. 사람들은 기만에 능한 제갈량을 싸움에 능한 장비보다 더 높게 평가한다. 신적인 존재로 보기까지 한다. 대중은 군주가 진정으로 누군지를 알 수 없다. 단지 보고 들어서 안다. 평판의 동원은 정치의 본질이다. 얼마든지 위대한 존재로 자신을 만들 수 있다. 남을 두렵게는 하되 스스로는 두려워 말라. 자신의 영혼을 위태롭게 만들 일일지라도 불가피한 일이라면 자신감을 가져라.

대중의 열정 악용하려는 정치인 넘쳐

문제는 이런 조언이 사악한 인간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악마 같은 정치가가 권력 의지를 갖게 되면, 법의 힘으로도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여론을 악용해 힘을 갖게 된 그를 쫓아내려면 혁명에 가까운 힘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는 고대 시라쿠사 왕국의 독재자 아가토클레스를 들어 이 문제를 논한다. 그는 낮은 신분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대중의 평판을 얻고 군사적 용맹함으로 국가를 장악했다. 그러고는 동료를 배신하고 악행을 일삼아 권력을 지켰다. 뒤늦게 후회한 민중은 그가 권력을 잃은 뒤에야 폭력과 분열의 상처를 지울 수 있었다. 아가토클레스는 그리스어로 ‘선한 영광’을 뜻한다. 선하지 않은 사람이 선한 척해서 권력을 갖게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역설적으로 그의 이름이 잘 말해준다. 선한 정치인은 비르투가 없고 악한 정치인만 권력 의지를 가지면 민주주의도 최악이 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정치론이 오해되고 비난받고 악용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착하게만 창조하지 않은 신에게도 절반의 잘못이 있다고 보았다. 나머지 절반은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들 스스로 해결해 가야 한다. 정치의 세계는 대중의 열정을 악용하려는 야심가들로 넘쳐난다. 인간은 대중 독재의 출현 가능성을 감수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우리도 경험했듯, 민주주의는 실패할 수 있다. 정치도 잘못될 수 있다. 아가토클레스 같은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시, 그리고 또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은 『군주론』을 센 책으로 읽는다. 그렇지 않다. 슬픈 책이다. 기다리던 군주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 비극은 피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를 쓰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이 나라의 몰락과 노예 상태를 두고 당신과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치의 현실을 들여다볼수록 ‘도덕적 비애감’에서 벗어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군주론』에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진실이 있다.

박상훈 정치학자.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특유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글을 써왔다. 다작의 작가로 최근엔 『혐오하는 민주주의』 『정치적 말의 힘』 『청와대 정부』 등을 펴냈다. 유명 칼럼니스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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